한 팬이 보내온 휴대전화 문자가 계속 신경이 쓰인다. ‘명절이 되면 먼저 시집 간 여동생이 조카를 데리고 옵니다. 부모님들이 아주 기뻐하시는 게 민망스러워 슬그머니 집에서 나오지만 갈 곳이 없습니다.’ 서른이 넘도록 취직을 못한 청년이다. 그는 장가도 가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줄줄이 명절이 괴로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취직을 못해 부분 탈모가 된 젊은이도 떠오르고, 대학 입시에 계속 떨어지고 있는 수험생도 떠오르고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신경질을 내는 처녀도 떠오른다.
그들은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이 괴롭다. 친척들이 모이면 죄 지은 사람처럼 피한다. 그들은 제발 염려하지도 말고 묻지도 말아 주었으면 한다. 때로는 모른 척해 주는 것이 배려다. 가족 관계는 복잡하여 노력을 필요로 하는 관계다. 가족에게 바라는 인간의 공통성은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다. 내가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거나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만, 내가 좋은 배우자를 만났을 때만 나를 인정하지 말고 현재 있는 모습대로 수용해 달라는 것이다. 부모조차 자식을 부끄러워한다면 자식은 설 자리를 잃어 정서적 불안에 싸이게 된다. 가족 관계에서 또 하나 지켜져야 할 것은 ‘경계선’이다. 가족 관계가 지나치게 밀착되어 서로의 공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정신적 여유와 자유의 공간도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경계를 침범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삼십대 젊은이들을 ‘3포 세대’라고 부른다. 경제적, 사회적 억압으로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는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하며 산다는 것이다. 피곤하고 치열한 삶을 그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부모나 친척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해서 그들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 나름의 고뇌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명절이 되면 친척들 앞에서 우리 부모를 주눅 들게 하는 내가 불효자식인 것 같습니다’란 팬의 문자에 마음이 아프다. 그는 죄책감까지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 명절을 괴로워하는 젊은이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인숙 (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
[추석과 힐링] 명절이 괴로운 세대
입력 2014-09-06 03:02 수정 2014-09-06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