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직격 인터뷰] 노석철 산업부장이 롯데홈쇼핑 강현구 대표를 만나다

입력 2014-09-05 03:04
롯데홈쇼핑 강현구 대표가 지난달 22일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한 뒤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 사장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회사 개혁을 위한 ‘1000일 작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 3년 정도는 지난한 개혁 작업을 해야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김지훈 기자

롯데홈쇼핑 강현구(54) 대표를 인터뷰하러 사무실로 갔을 때 그는 '리스너'와 장시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리스너는 사내외에서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사정을 청취해 강 대표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무섭게 말하면 '사내 암행어사'이고 밝은 의미로는 내부 소통을 도와주는 '메신저'다. 강 대표가 최근에 도입했다. 강 대표는 롯데홈쇼핑 직원들의 금품수수 사건이 터지자 회사의 겉과 속을 모두 뜯어고치겠다는 각오로 강도 높은 개혁 작업을 하고 있다. 강 대표는 "개혁 작업을 3년 정도 해야 정착이 될 것"이라며 '1000일 작전'이라고 했다. 그를 지난달 22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 롯데홈쇼핑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건이 발생한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회사가 급속히 성장할 때 앞으로 나가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걸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창립 초기부터 매년 매출이 전년 대비 40% 이상씩 오르다 보니 협력업체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입점하려 하고 계속 남고 싶어 하니 이런 문제가 생겼다.”



-얼마 전 회사 전 직원이 모여 개혁방안을 놓고 집단토론을 했던데.

“처음에는 ‘쇼’처럼 될까봐 조심했는데, 얘기를 들어 보니 ‘우리가 하는 말을 회사가 제대로 아는 건지, 중간에 차단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의심하는 직원이 많았다. 직원들은 ‘회사 내에서 소통이 제대로 안 된다’ ‘회사에서 하는 거 나에게 안 가르쳐주고, 옆 부서에서 뭘 하는지 모른다’는 게 많더라. 그래서 먼저 터놓고 얘기를 다 듣자고 했다. 직원들도 어찌 보면 피해자다. 회사 이미지도 타격이지만 직원들은 마치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 욕을 먹고 명함 내놓을 때 눈치 봐야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당신도 피해자다. 같이 바꾸자’고 했다.”



-개혁 작업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은 뭔가.

“변호사, 전직 기자, 모더레이터로 구성된 리스너 팀을 도입해 직원들의 말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 리스너가 전하는 얘기 중에 회사는 별거 아닌데 직원들은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택시비다. 회사는 ‘한 달에 10만원 교통비 주고 택시비 청구하는 제도도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직원들 입장에서는 ‘새벽 2시에는 택시가 없다. 회사에서 불러주든지 하라’는 것이다. 협력사에는 이런 사례도 있다. 협력사한테 자료화면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이 자료화면을 우리 PD가 본인의 다른 프로그램에 쓰더라는 것이다. 피디는 ‘좀 쓸 수 있지 않나’ 생각했을 텐데 협력사에서는 자존심 상해서 그만뒀다고 한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협력사를 좌절하게 만드는 요인이란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직원들이 비리에 대해 서로 침묵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고속성장을 하면서 주주는 계속 바뀌는데 직원은 그대로였다.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 자기 윗사람도 바뀌고 하니까 직원들 입장에서는 패배감이나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시켜라. 나는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이런 문화가 됐다.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 ‘뭐가 힘드냐’ ‘따르라’고 다그치고, 무슨 말 하려고 하면 딴죽건다고 하니까 입을 닫기 시작한 거다. 그런 분위기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



-컨설팅사 우드랜드 그룹의 파트리샤 지아노티 박사의 조언을 구하고 있다는데.

“지아노티 박사는 반대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것을 만들어내라고 우리에게 처방했다. 처음엔 그 얘길 들으니 ‘그럼 우리 직원들이 할 말도 못하고 사는 병신이란 말이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우리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위계질서가 엄격해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데 서투르다. 눈에 띄는 부조리에 대해 노(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문화가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외부에 거창한 선언을 하기 전에 내부부터 바꾸자고 마음먹었다. 공공기관 중심으로 투명성 지표를 내는 시스템을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



-저녁 자리를 아예 금지할 수도 없을 테고, 갑을관계 단절이 쉽지 않을 텐데.

“문화와 내성의 문제다. ‘돈 받지 마’ ‘협력업체랑 술 한잔 할 때 보고하고 가’라고 해도 번개로 만나면 그만이다. 그건 문화를 바꿔야 된다. 예전에 들은 이병철 회장의 일화가 있다. 계열 백화점에 일 잘하는 이사 한 명이 비리를 저질렀는데 당시 이 회장이 ‘그 정도 갖고 일 잘하는 놈을 자르면 되겠느냐’고 했단다. 그런데 3년 뒤 그런 비리가 줄줄이 나와서 힘들게 개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는 한번 틀어지면 바로잡는 게 힘들다. 나는 직원들에게 1000일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도 습관화되는 데 3년은 걸릴 것이다.”



-대표이사로서 직접 직원들과 소통하는 방법은 구했나.

“롯데닷컴에 있을 때는 직원들을 거의 내가 뽑았고, 얼굴 표정만 봐도 잘 아니까 소통의 어려움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근데 여기 와서 보니 혼자 말 타고 뛰어다닌다고 해도 커버가 안 되더라. 소통 방법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얻어진다. 내가 윗사람한테 받는 스트레스와 나 때문에 아랫사람이 받는 스트레스의 갭을 측정해서 관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와서 제일 먼저 사장실 문 열어놓으면 안 닫히게 초강력 자석을 달아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 자리까지 올 때 ‘사장 계시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고, 내가 뭘 하는지 보이게 만들자는 취지다. 내가 이사 때는 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냈는데 대표가 된 뒤 닫혀 있는 방이 생기니까 발걸음이 뚝 끊기는 직원들이 생기더라. 그런 걸 허물려고 노력 중이다.”



-컨설팅 회사의 자문을 받고 있다던데.

“처음에는 ‘우리가 잘못한 것보다 여론에 많이 맞는 것 같아 억울하다’는 생각에서 컨설팅을 요청했다. 여론에 덜 엊어맞으려고 ‘홍보 잘하는 법’을 배우려 했다. 그런데 컨설팅사는 조직문화 진단부터 하자고 하더라. 그 말이 맞았다. 밖에서 명함 내밀기 쑥스러운 직원들이 나가서 어떻게 물건 사달라고 말하겠나. 회사 주인은 소비자에게 회사를 대변하는 직원들이다. 직원들을 당당하게 만드는 것.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개혁이다.”

노석철 산업부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