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서사 속에 펼쳐진 노년의 내면 풍경
저문 날의 삽화 1∼5
“너도 늙어봐라”는 말에는 괘씸함과 쓸쓸함이 묘하게 엉겨 있다. 허나, 청춘이 세월 건너 저편의 노년을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헤아려볼 수 있지 않을까.
박완서 선생의 소설집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문학동네)에 실린 단편 ‘저문 날의 삽화 1·2·3·4·5’는 노년의 내면 풍경이 구체적 서사 속에 펼쳐진다. 바쁘다며 저희만 챙기거나, 은근히 노인을 소외시키는 젊은 저들의 행태에 서운함을 내비치는 대목에선 흠칫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한 움큼의 환약에 기대는 늙음에 대한 자기 경멸에는 연민이 솟는다. 노년의 속물근성에 대한 비아냥, 숙명에 대한 달관에는 박완서의 힘이 느껴진다. 특히 ‘저문 날의 삽화 4’는 추석 성묘 풍경을 통해 늙음과 젊음의 간극을 드러낸다. 청장년에는 반성을, 노년에는 위로를 주는 책.
손영옥 기자
하루키의 인생관 등 들여다보는 재미 쏠쏠
하루키 소설집과 회고록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랜 팬부터 이제 막 그를 알아가는 독자까지 부담 없이 읽을만한 책 3권을 골랐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009·문학사상사)는 하루키의 회고록이다. 작가의 문학관과 인생관,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마라토너로도 유명한 하루키가 왜 많은 운동 중 달리기를 선택했고, 달리기가 그의 소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신작 ‘여자 없는 남자들’(문학동네)은 9년 만에 나온 소설집. 최근 1년 동안 쓴 작품들로 주로 중년 남자의 상실감을 다루고 있다.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중년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도쿄 기담집’(비채)은 가장 하루키다운 이야기라고 평가받는 소설집으로 최근 출판사를 옮겨 새로 나왔다.
한승주 기자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해 즐기는 요리법 소개
킨포크 테이블 1·2
라이프 스타일 분야에서 올해 가장 주목받은 책. 지난 해 연말 출간돼 지금까지 3만부 이상 팔렸다. ‘킨포크(kinfolk)’는 미국 포틀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젊은 부부가 친구들과 함께 발행하는 계간 잡지의 제호지만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추구하고, 가족, 이웃, 친구, 연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대표하는 말이 됐다.
‘킨포크 테이블’(윌북)은 잡지 ‘킨포크’의 첫 선집으로 집에서 요리를 해먹고, 식사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즐기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함께 밥 먹는 이야기’를 요리법과 함께 소개한다.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멋진 사진들과 짧지만 정제된 문체, 세련된 편집으로도 유명하다. 읽다보면 주말 저녁 누군가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질 것이다.
김남중 기자
명절날에 어머니를 만날수 없는 사람들 볼만
내 어머니 이야기 1∼4
오십에 이른 노처녀가 구십에 가까운 노모를 모시고 산다. 딸은 늦깎이 만화가요, 어머니는 북한 출신의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딸은 어머니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고, 어머니는 그 모습이 귀여워 밤낮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렇게 보내온 세월이 8년, 어머니가 얘기하고 딸이 그린 만화책이 네 권으로 완성됐다.
만화가 김은성은 40대의 8년을 온전히 어머니 이복동녀씨의 인생을 정리하는데 보냈고, 어머니의 인생에는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가 들어있으니 우리 역사 100년을 너끈히 아우르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 이야기가 그리운 사람들, 명절이 돼도 어머니를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새만화책 출판.
서윤경 기자
취업은? 결혼은? 등 이런 질문들이 두렵다면…
그리스인 조르바
분가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이 10대에겐 학업, 20대에겐 취업, 30대에겐 결혼에 대한 압박의 장이 되기도 한다. 피붙이지만 반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가족들에게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쭈뼛쭈뼛 말을 더듬느니 차라리 자진해서 출근을 하거나 여행을 계획하는 젊은이도 많다.
명절이 돌아오면 습관처럼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들에게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를 선물하고 싶다. 이 책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주저 없이 ‘자유’다. 내용은 간단하다. 우연히 만난 젊은 ‘나’와 60대의 열정남 ‘조르바’가 크레타섬에서 탄광 사업을 하다 망하게 되는 이야기. 그렇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의 삶은 통쾌함 그 자체로 다가온다. 이들이 온몸으로 깨우친 실패의 과정을 따라 가다보면 뭔가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샘솟을 것이다.
김미나 기자
국민일보 문화부 기자들 추천 ‘추석 선물용 책’
입력 2014-09-05 0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