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화백이 이 돌의 무게를 아시오?”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은 숨지기 직전 화가 김선두(56·중앙대 교수)에게 돌 하나를 선물했다. 이 작가는 평소 돌을 수집하는 수석(壽石) 애호가였다. 김 작가가 돌을 들어보니 너무 무거워 사양하려 하자 이 작가는 돌의 무게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 돌을 집으로 가져간 김 작가는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두 예술가는 같은 고향(전남 장흥) 사람이다. 1985년 전래동화를 함께 펴내면서 각각 글과 그림으로 만난 이후 3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왔다. 김 작가는 2008년 이 작가가 숨진 후에도 그의 소설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하다 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김 작가는 이 작가의 ‘눈길’을 수차례 그림으로 그렸고, 병풍으로 만들기도 했다.
생과 사를 달리한 두 작가가 함께하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갤러리 본점은 추석을 맞아 3일부터 28일까지 ‘이청준·김선두의 고향읽기’ 전을 마련한다. 문학과 미술의 경계를 뛰어넘어 30년가량 전시와 출판을 함께하며 지속적으로 공동 작업을 펼쳐온 두 예술가의 작품을 모은 전시다.
두 작가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정신적 텃밭’인 고향 남도를 각각 산문과 그림에 담아왔다. 김 작가는 이 작가의 소설 ‘서편제’ ‘남도사람’ 등을 소재로 한 그림과 문학평론가 이윤옥이 엄선한 고향 관련 산문을 그림으로 재해석한 신작 16점 등 40점을 선보인다. 이 작가의 친필 원고를 비롯한 타자기, 필통, 만년필, 재떨이 등 유품과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 등도 함께 전시된다.
2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 작가는 “느린 선의 미학을 통해 우리네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 이청준 선생님과 제가 추구하는 예술정신”이라며 “돌의 무게 얘기는 예술가의 길이 험하고 고되지만 의지를 잃지 말고 묵묵하게 걸어가라는 당부의 말씀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문학+미술로 ‘고향읽기’… 소설가 故 이청준·화가 김선두 공동작업 작품 전시회
입력 2014-09-04 0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