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가 나쁜 규제 움켜쥐고 있는지부터 공개하라

입력 2014-09-04 03:20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제2차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점검회의가 3일 열렸다. 규제를 ‘암 덩어리’, ‘쳐부셔야 할 원수’ 등의 험한 표현을 써가며 대통령이 규제혁파를 강조하고 직접 규제개혁을 챙기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지금 우리 경제는 중대한 골든타임에 들어서 있으며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며 “우리 경쟁국들은 과감한 규제개혁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규제개혁은 너무 안이하고 더딘 것이 아닌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맞는 지적이다. 규제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삼고 기업들에 투자할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이해관계자들의 반발과 공무원들의 보신주의, 무기력한 국회에 발목잡혀 개혁이 겉돌고 있으니 안타깝다.

규제개혁은 단순히 이벤트성으로 그쳐선 안 된다. 규제개혁을 제대로 하느냐에 따라 우리 경제는 한강의 기적을 다시 이룰 수도 있고, 저성장 늪에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중앙부처 등록규제가 1만5326건으로 지난해보다 275건, 연초에 비해 44건 늘었다니 개탄스럽다. 지난 3월 1차 규제개혁회의에서 건의된 52건의 규제 중 최근까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17건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닦달이 있고 나서야 부랴부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오는 12월까지 해결하려 했던 ‘게임 셧다운제’ 등을 끼워넣었는데 한심하기 짝이 없다. 청소년의 게임중독 등 부작용이 심각한데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영세업자들을 위해 푸드트럭 영업 규제를 완화했더니 대기업이 뛰어들었다. 규제완화가 마구잡이로 건수를 올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규제개혁이 곧 규제완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규제완화가 필요한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일선 현장에서는 “회의만 백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공무원들의 의식이나 현장을 모르는 탁상규제는 그대로다”라는 불만들이 여전하다. 이날 회의 참석자들의 발언을 들어보면 이런 규제가 있나 싶을 정도의 불필요한 규제가 많았다. 메이크업 일만 하고 싶은데 이와 무관한 헤어미용 기술을 습득하고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에 관련 법이 묶여 있어 규제개혁을 못 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7대 유망 서비스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 135개 과제 중 112개(83%)는 국회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다.

규제개혁 속도를 더 높이고 규제개혁을 외면하는 공무원에 대한 채찍이 필요하다. 공무원들이 움직이게 하려면 없애야 할 규제에 책임 있는 장관부터 사무관까지 ‘규제실명제’를 실시해 누가 나쁜 규제를 움켜쥐고 있는지를 공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