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쓰레기통이 있는데 쓰레기가 넘쳐나는 순간 가족들이 무서운 병균에 노출된다고 하자. 또는 평온하던 우리 동네에 어느 날 갑자기 쓰레기장이 들어서게 된다는 계획이 알려졌다.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이 쓰레기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다. 치명적인 고열과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안전한 처리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원전 부지 내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지만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저장능력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2024년 이후에는 국내 원전 부지 내에 사용후핵연료를 모아둘 공간이 없게 된다. 결국 국내 어딘가에는 이 ‘핵 쓰레기’들을 처분할 부지가 필요하다.
국민일보는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의 후원으로 지난달 29일 프랑스 뷰흐 지역을 방문했다. 프랑스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있어서 한국보다 몇 걸음 앞서나가고 있다.
뷰흐 지역의 실증 연구시설은 최종처분시설과 같은 조건으로 암반을 굴착했다. 최종시설은 지하로 500m를 뚫고 내려간 뒤 그물망처럼 핵폐기물을 처분할 갱도를 지을 계획이다. 암반이 물이 새지 않는 점토암인데다가 단층도 지나가지 않아 과학적 입지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인근 지역의 인구밀도도 낮다. 별다른 하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정부의 인허가가 나고 2025년부터는 중간저장시설 3곳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모두 옮겨와 처분할 계획이다.
그러나 프랑스도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1980년대 폐기장 부지를 선정하려다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뒤 15년 동안 방사성폐기물 처리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됐다. 이후 지자체 3곳의 신청을 받아 뷰흐를 영구처분시설을 위한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고, 독립적인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2년 가까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일부 마을 주민들과 반핵단체들은 아직도 반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지원이 충분치 않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앙투안느 제라르 뷰흐 시장은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기 전에는 정부도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우리가 결과를 다 감수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지 선정을 앞둔 한국 국민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밀가루 뒤집어쓰지 말고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말했다. 밀가루를 뒤집어쓴다는 말은 프랑스에선 ‘뒤통수를 맞는다’는 뜻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여러 차례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시도했지만 주민들의 반대 속에 번번이 좌절됐다. 무엇보다 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3년에는 전북 부안 지역에 핵폐기장 유치를 반대하는 대규모 소요가 발생해 경찰 8000여명이 투입되는 ‘부안 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정부는 지난해 민간 위원 13명으로 구성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의견 수렴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위원회는 연말까지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방안에 대한 권고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게 된다. 일단 관리방안이 결정되면 중간저장·최종처분시설의 부지 선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뷰흐(프랑스)=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르포] 프랑스 뷰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실증 연구시설
입력 2014-09-04 0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