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영미] 세월호에 관해 우리는 뭘 모르는가

입력 2014-09-04 04:22 수정 2014-09-04 08:17

대화가 꼭 합의에 이르리란 법은 없다. 어떤 이견은 타협되지 않는다. 실망할 필요 없다. 결론이 없구나 싶어지는 것조차, 차이를 확인하는 선에서 결론일 수 있다. 많은 대화가 도달하는 최선의 지점은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니"란 자각이다. 무력해도 장점이 있다. 오직 주장의 정당함만으로 경쟁하는 '링'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너는 나랑 다르구나, 이런 대화도 최소한 실패는 아닌 거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상황이 실망스러운 건 우리가 합의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한국사회에 잘 작동하는 합의 메커니즘이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예상보다 큰 의견 차도 이유는 아니다. 양분된 이념지형 역시 새삼스럽지 않다. 놀라운 건, 손에 닿는 이슈 전부를 너저분한 몸싸움으로 변신시키는 우리의 기적 같은 능력이다. 만약 한국사회에 공론의 장이란 게 존재한다면, 모든 걸 빨아들여 폐수 처리하는 하수구에 불과하다. 재처리 후 남는 건 악의뿐이다.

상상 이상의 악의란 이런 거다. 세월호 참사의 어느 순간에서든, 단식 농성장 앞에서 '과식 퍼포먼스'를 예고하며 그걸 재기라고 뻐기는 이들이 나타나리라 예상했던가. 딸 잃은 아버지에게 "당신은 한 달에 몇 만원짜리 국궁을 했느냐"고 따져 묻는 상황을 상상했는가.

대체 한 개인을 어디까지 궁지로 몰면, 그가 '읽지 못함'이 표시된 죽은 아이의 카톡으로 자신의 부성애를 증명하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떤 논리적 사고 과정을 거치면 '집단 괴롭힘'을 '아버지의 자격' 논란으로 포장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는 범죄자도, 가해자도, 심지어 공인도 아닌 피해자 가족에게 "특별법을 주장하려면 죽은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먼저 증명하라"고 다그치고 있다. 마치 유가족의 도덕성과 사건의 진상이 결정적인 인과관계라도 갖는 것인 양 말이다. 이건 얼마나 기괴한 일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유가족의 삶에 대해 평가할 권리는 없다. 그들이 누구든, 어떻게 살아왔든 세월호 특별법과는 무관하다. 특별법에 관한 이야기는 정확히 '우리는 세월호에 관해 무엇을 알고자 하는가'라는 성찰에서 출발해야 마땅하다.

세월호를 오래 지켜본 이들 중에서는 '진상규명' 주장에 고개를 갸웃대는 경우가 있다. 새삼? 세월호의 불법개조·과적은 이미 밝혀졌다. 선원들의 무책임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구조 과정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의 우왕좌왕은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봤다.

처벌도 진즉 시작됐다. 검찰은 이미 7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331명을 입건해 그중 139명을 구속했다. 배를 버린 세월호 선장·선원들,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소유주인 유병언 일가 및 선박 안전·감독 기관의 책임자들이 살인·업무방해·선박안전법·허위공무서작성 등 혐의로 줄줄이 법정에 섰다. 해경에 대한 수사도 속도가 붙었다. 수사권·기소권 놓고 줄다리기해 더 찾아낼 진실이 뭐냐는 얘기다.

이쯤에서 각자 세월호를 지켜보며 품은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볼 수 있을 거다. 침몰의 직접적 원인이 '변침'이라는 검찰 결론을 두고는 의문을 표하는 전문가들이 꽤 있다. 시뮬레이션 결과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단기간의 검찰 수사로 변침이 사고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거다.

4회나 수정됐던 세월호의 항적도(항해경로 기록), 해경과 해난구조대 특수전전단 중앙119구조단 등 구조인력 사이의 대화·지휘·보고체계는 물론이고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전남도 청와대 등 정부 각 부문 사이에 이뤄진 보고 및 대응도 전부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구조대가 코앞의 헬기를 두고 몇 시간씩 버스 타고 돌아 간 일이며, 나오기만 하면 살 수 있다는 한 마디를 결국 아무도 하지 못한 최대 미스터리가 풀린다. 대통령의 7시간? 세월호와 국정원의 관계? 진짜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이영미 종합편집부 차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