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한강 수난사

입력 2014-09-04 03:39
“한강 백사장에서 뒹굴면서 동녘바다 명사십리를 그려보는 것도 바쁜 생활에 어울리는 피서법이다. 일요일을 맞아 더위를 피해 집을 나선 수만 명의 시민들이 한강을 찾았다.” 1950년대 신문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70년대이전에 청소년기 이후를 서울에서 보내지 않은 세대에게는 생소하겠지만 한강에는 넓은 백사장들이 있었다. 광나루, 용산·마포나루터, 압구정, 노량진, 양화리 등이 모두 모래밭이었다. 그곳에는 시민 수십만 명이 정치인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고, 학생들이 방과후 결투를 벌이기도 했다. 한강 물을 직접 떠서 마시던 시절이었다.

한강 서울 구간에는 토사가 쌓여 생긴 하중도(河中島)가 10여개였다. 저자도, 무동도, 부리도 등은 다른 섬을 뭍으로 만드는 매립지 조성을 위해 사라졌다. 여의도, 잠실, 반포, 미사리 등도 섬이었으나 육지와 연결됐다. 드넓은 모래사장은 제2차 한강개발사업(1982∼86년) 때 완전히 사라졌다. 서울시는 파헤친 모래와 자갈을 아파트 건설업체에 팔아 올림픽대로와 한강둔치공원을 건설했다. 한강은 2차 개발사업 총 공사비 9560억원의 약 20%인 1962억원을 이렇게 제 살을 깎아서 마련했다. 4년 동안 한강에서 캐낸 모래와 자갈은 6369만㎥에 이른다.

2차 한강개발사업의 핵심은 강바닥을 2.5m 이상으로 일정하게 파내는 저수로 정비였다. 유람선이 다닐 수 있게 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준설과 더불어 한강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잠실과 신곡 등 2개 수중보 건설이었다. 전문가들은 수중보 건설 이후 한강 하류가 계단식 저수지에 가깝다고 말한다. 한강 수질은 하류로 갈수록 더 나빠졌다. 강물을 정화하는 하천 모래가 사라진 데다 유속이 느려졌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수중보 철거 여부에 대한 종합적 검토와 강변 숲 확대 조성 등을 포함한 ‘한강 자연성 복원’ 계획을 추진 중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일 한강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할 공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지만 최 부총리는 투자 활성화 방안으로서 ‘한강지역 관광자원화’에, 박 시장은 ‘한강의 생태성 강화’에 각각 방점을 찍고 있어 이 둘을 어떻게 조화할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서울시 자문기구인 한강시민위원회는 이번 합의가 ‘한강의 자연성 회복’이라는 그간의 정책 기조를 흔들 수 있다고 보고 박 시장이 쇼핑센터 등 개발 위주의 정부 계획에 동조한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서울시와 기획재정부의 한강개발 합의는 지금 봐서는 동상이몽일 것 같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