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서광욱] 모세가 법당에 가는 시대

입력 2014-09-04 03:47

아들이 공군에 자원입대했다. 경남 진주에 있는 공군훈련교육대에서 5주간 훈련을 받으면서 한 입대 동기 훈련병과 친하게 지내게 됐다. 힘든 훈련 기간에 마음이 통하는 동기를 만난다는 것은 모든 훈련병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아들의 군 생활은 출발이 좋았다.

아들의 말동무가 된 동기는 같은 내무반에서 옆 침대를 쓰는 훈련병이였다. 쉽게 친밀감을 느낀 이유는 다름 아닌 그 병사의 이름 때문이었다. ‘김모세’. 이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 줄 정도라면 그 부모의 신앙적 내력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역시 아들도 그 동기의 명찰을 보자마자 ‘부모님이 교회 쪽이구나’ 싶어 어떤 동지애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 감정에 솔직했던 아들이 김모세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마음을 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주일이 되면 교회에 같이 가는 신앙 동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첫째 주 훈련이 끝나고 기다리던 주일 아침이 되었다.

모든 훈련병들은 훈련소에 머무는 이상 하나의 종교를 택하여 주일 종교행사에 필히 참석해야 한다. 종교 활동 시간이 되자 훈련병들은 막사 앞에 3열 종대로 길게 늘어섰다. 오른쪽 줄은 교회로 향하는 줄, 가운데 줄은 성당으로 가는 줄, 왼쪽 줄은 법당으로 가는 줄이다.

아들은 교회로 향하는 줄에 서서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김모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법당 가는 줄에 서 있는 것이었다. 아들은 김모세에게 손짓을 했다. “교회에 가는 줄은 이쪽”이라고. 그런데 김모세는 아들의 손짓을 외면했고, 결국 법당으로 향했다.

김모세가 법당에 간 사실에 당황한 아들은 애써 그 이유를 추론해 보았다. ‘아마 호기심 때문에 간 거겠지.’ ‘다음 주일에는 교회로 돌아오겠지.’ 아들의 기대는 어긋났다. 김모세는 주일마다 법당에 갔다고 한다. 훈련소에서 수료식을 마치고 자대로 출발하기 전 아들은 김모세에게 물었다. “모세야, 넌 왜 법당에 갔니?” 모세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고 한다. “응, 나는 법당에 가야 마음이 편해….”

모세가 법당에 가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시대가 됐다. 모세가 그 지경이라면 다른 평범한 우리의 자녀들은 지금 어디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십자가가 벽에 걸려 있는 가정 안에 머문다고 해서 저절로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

영적 돌봄이 절실한 청소년들이 가정과 교회 안에서 너무 방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세가 법당에 가는 현실은 무늬만 기독교인이라는 교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자녀들은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치열한 입시경쟁에 내몰렸다. 자녀들이 주일예배에 빠지고 학원에 가는 것을 야단치기는커녕 오히려 대견스럽게 여기는 부모의 종교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신앙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일에 무관심한 종교는 그 끝이 뻔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 쇠퇴의 원인을 밝히는 단서는 가정에 있다. 심연으로 추락할 것 같은 한국교회의 재건과 부흥을 꿈꾼다면 그 출발지는 가정이 돼야 한다.

서광욱 목사(예장통합총회 군·농어촌선교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