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하늘목장이 40년 베일을 벗고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사람이 그리웠던 양과 젖소들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도 만난 듯 기쁨에 겨워 푸른 목초 밭을 이러 저리 뛰어다니고, 선자령 능선을 수놓은 풍력발전기들은 거센 바람을 동력삼아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돈다. 동해의 바닷바람을 날개에 실어 보낸 지 얼마나 됐을까. 백두대간 능선을 힘겹게 넘은 운해가 풍력발전기 아래서 구름바다를 연출한다.
백두대간 사면이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강원도 평창의 대관령 고원에는 알프스를 연상케 하는 드넓은 초원이 목가적 풍경을 그린다. 1970년대 초 배고프던 시절 식량자급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척한 대관령 삼양목장과 대관령 하늘목장이 주인공이다.
대관령 고갯길에서 선자령과 매봉산을 거쳐 소황병산 입구까지 약 16㎞ 길이의 백두대간 능선 북서사면에 위치한 목장의 면적은 약 1000만평. 대관령 삼양목장은 일찍이 관광자원으로 개방됐으나 대관령 하늘목장은 오로지 목축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관령 고원이 올림픽 특구로 지정되면서 대관령 하늘목장도 지난 1일 빗장을 활짝 열고 관광객을 맞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연순응형 생태체험 목장을 콘셉트로 개방한 300만평 규모의 대관령 하늘목장은 1단지와 2단지로 나뉘어져 있다. 황병산에서 발원한 송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선자령(1147m) 아래에 위치한 1단지가 나온다. 하늘목장에서는 환경보전을 위해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 관광객은 트레킹 삼아 조붓한 산책로를 걷든지 트랙터가 끄는 32인승 포장마차를 타고 목장전망대까지 이동할 수 있다.
하늘목장에는 모두 4개의 산책로가 있다. 그중 목장전망대 부근에서 선자령에 이르는 ‘너른 풍경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풍광과 매력을 발산한다. 계곡과 목장 사이로 난 ‘가장자리숲길’은 옛날 목동의 이동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로 목장 풍광을 감상하면서 고산생태를 몸으로 체험하는 하늘목장 대표 산책로다.
가장자리숲길 옆에는 낯익은 넓은 초원과 바위가 눈길을 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초원에서 미끄럼을 타고 멧돼지와 쫓고 쫓기는 장면을 촬영한 현장이다. 버려진 전투기 잔해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목동들이 지름길로 이용하던 ‘종종걸음길’과 우거진 나무숲 터널 사이로 산책을 즐기는 ‘숲속여울길’이 있다.
컴퓨터 바탕화면을 연상시키는 하늘목장에는 능선이 온통 초지로 덮인 별맞이 언덕이 있다. 구릉이나 산으로 이루어진 목장에 조성된 평탄한 초원은 거센 바람에 목초가 파도타기를 할 때 가장 아름답다. 해가 지면 밤하늘 별들이 머리 위에서 쏟아질 것 같은 이색풍경도 연출한다.
하늘목장의 하이라이트는 선자령 가는 길이다. 선자령으로 가는 길섶은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야생화들이 피고 지는 야생화 천국이다. 계절은 벌써 초가을이지만 고지대인 선자령에는 노루오줌과 산꿩의다리 등 여름 꽃이 한창이다. 한겨울의 선자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눈꽃 트레킹 코스다. 정상에 서면 강릉 시가지와 동해는 물론 횡계 시가지와 백두대간 능선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말을 타고 떠나는 외승체험객에게만 개방되는 하늘목장 2단지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푸른 초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약 3㎞. ‘하늘채’로 명명된 정상은 백두대간 능선에 위치한 대관령 삼양목장이 그림처럼 보이는 곳이다.
대관령 하늘목장에서 송천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1.5㎞ 달리면 에코그린 캠퍼스로 불리는 대관령 삼양목장이 나온다.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대관령 삼양목장은 선자령에서 소황병산까지 백두대간 능선을 경계로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초원과 드문드문 뿌리를 내린 고목, 그리고 깨끗하게 단장한 축사가 이국적인 대관령 삼양목장의 면적은 600만평. 해발 850∼1328m의 고원지대에 서울∼대전 거리인 156㎞의 목도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제주도 오름처럼 봉긋봉긋 솟은 삼양목장은 거대한 세트장이나 다름없다.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와 드라마는 가을동화, 베토벤 바이러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연애소설, 태극기 휘날리며, 야인시대, 장길산, 임꺽정, 바람의 전설, 바람의 파이터, 별, 선녀와 사기꾼, 중독, 이중간첩 등 어림잡아 160여편. 영화 ‘연애소설’에서 차태현과 손예진, 이은주가 웃옷을 우의 삼아 비를 피하던 팥배나무는 탐방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은서와 준서의 자전거길로도 유명한 중동은 드라마 ‘선녀와 사기꾼’에서 안재욱이 다리를 다친 김규리를 업고 내려오는 장면과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장혁과 전지현이 지프를 타고 달리던 장면을 촬영한 명소. 한때 지프를 타고 영화 흉내를 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삼양목장에서 운행하는 버스 외에는 자동차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삼양목장의 동해전망대(1140m)는 해돋이 명소로 고사목을 비롯한 나목의 가지가 바람 부는 반대 방향으로 뻗을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이른 아침 강릉 시가지 너머 동해에서 해가 불쑥 솟으면 오렌지 빛으로 물든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빙글빙글 돌며 햇살을 초원으로 반사한다.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설치된 대관령 풍력발전단지의 풍력발전기는 모두 53기. 매서운 바람을 동력으로 힘차게 회전하는 풍력발전기는 멀리서 보면 바람개비를 꽂아놓은 것처럼 앙증맞다. 하지만 80m 높이의 기둥 아래에 서면 직경 90m의 날개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전율을 느끼게 한다.
대관령 고원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등장하는 사진집처럼 아름답지만 절경의 90%는 소황병산 정상에 서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강릉에서 보면 매가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매봉을 넘어 소황병산에 오르면 동쪽으로 강릉 경포해수욕장과 청학동 소금강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서쪽으로는 높고 낮은 구릉이 완만하게 연결된 목장 전경이 발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진다.
평창=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대관령 초원에 서면 누구나 영화 주인공
입력 2014-09-04 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