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거부한 父·祖父
“닭보다 메추라기를 더 많이 키울 계획입니다.” 김일성 북한 주석의 말에 덩샤오핑은 시큰둥했다. 대신 덩은 “사회주의가 부(富)를 가져다줘야 합니다. (중국은) 경제개혁과 현대화의 길로 나아갈 겁니다”라고 대꾸했다.
1982년 김 주석과 덩 중앙군사위 주석 간의 북·중 정상회담은 겉돌고 있었다. 김 주석은 경제난 극복 방법으로 메추라기 사육을 내놓았다. 이에 덩 주석은 “중국을 경제개발과 현대화의 길로 끌어나갈 것이다. 해외기술과 경영, 자본에 시장을 개방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당시 통역을 맡았던 상하이 푸단대의 장 웨이웨이 교수가 최근 언론에 공개한 내용이다.
어쩌면 32년 전 두 나라 정상의 대화에서 북한과 중국의 ‘현재’가 예고됐는지 모른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급했던 김 주석은 메추라기 사육에 집착했지만, 덩샤오핑처럼 국가가 가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김 주석이 덩샤오핑과 ‘다른 길’을 걸은 지 20년 가까이 흐른 2001년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용 열차로 상하이를 찾았다. 김 위원장은 “상하이가 천지개벽을 했다”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듬해 ‘7·1 경제개선관리조치’를 발표하며 경제개혁에 시동을 거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진·선봉 특구와 신의주 특구 모두 사실상 실패했다.
체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내세움에 따라 개혁·개방, 먹고사는 경제발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1, 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한반도 화해 기류도 몇 차례의 핵실험과 군사적 도발로 도루묵이 됐다.
그 사이 1970년대 남한보다 형편이 나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북한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854달러로 우리나라의 1976년 1인당 명목 GDP 807달러와 비슷했다. 2013년 우리나라 1인당 GDP 2만2828달러의 3.6%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6569달러) 베트남(1896달러) 라오스(1490달러)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다.
이런 북한의 ‘현실’을 손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대내외 조건은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에 비해 그리 나쁘지 않다. 남쪽에는 ‘통일 대박’을 슬로건으로 내건 정부가 있다. 조건만 맞는다면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 주고, 인프라 구축까지 해 주겠다는 드레스덴 선언도 이미 나와 있다.
김 제1비서 ‘개인적 경험’도 아직까지는 장점으로 거론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지난달 22일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을 맞아 중국에서는 그와 마오쩌둥을 재어 보는 일이 잦았다. 젊은 시절 프랑스 유학 경험이 있는 덩이 마오와 달리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는 분석에 눈길이 간다. 김 제1비서도 스위스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 그가 마식령 스키장을 비롯해 관광사업에 유난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유학 경험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그 걸로는 부족하다.
중국의 변신에서 배워라
집권 3년 차를 맞은 김 제1비서에게 할아버지, 아버지가 가지 않은 길을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제는 메추라기를 키우거나, 경이적 놀람만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젊은 지도자로서 중국이 어떻게 지금의 초강대국이 됐는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은 어떤 변신을 꾀했는지를 면밀히 분석하면 답을 얻을 수 있다. 그 다음 이미 잡을 준비가 돼 있는 남측에 손을 내밀면 된다. 머뭇거리다가는 또다시 변화와 생존의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 김 제1비서의 통 큰 선택을 기대해 본다.
한민수 외교안보국제부장 mshan@kmib.co.kr
[데스크시각-한민수] 손자 김정은의 선택
입력 2014-09-04 0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