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선교 130년 역사 속에서 디아코니아(나눔과 섬김)는 교회의 필수 사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교회의 하나됨을 보여준 2007년 태안지역 섬김 봉사부터 최근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교계의 섬김은 이어지고 있다.
국민일보는 기독교 사회복지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교회 디아코니아 사역의 현황을 점검하고 청사진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한국교회희망봉사단(한교봉)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김종생(57·온양제일교회) 목사와 한국디아코니아신학회 회장 김한호(50·춘천동부교회) 목사, 한국교회사회사업학회장을 지낸 이준우(46·강남대 대학교회) 목사가 참석했다.
-한국교회사에서 태안지역 섬김 봉사는 최대·최장 연합 사역으로 꼽힌다. 태안 섬김 활동은 한국교회 디아코니아 역사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김한호 목사=한국교회 에큐메니컬(교회일치·연합)운동의 질적 발전을 가져왔다. 교계 내 보수와 진보를 각각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교단들이 함께 섬김 활동에 참여해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김종생 목사=연합 사역 활동을 원활하게 조정했던 ‘코디네이터(진행 담당자)’의 역할이 돋보인 사역이었다. 당시 실무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한교봉이라는 조직이 봉사활동의 우선순위와 경중에 따라 다양한 인적·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이준우 목사=큰 교회와 작은 교회 가릴 것 없이 자율성을 토대로 더불어 하나 되어 섬김 활동을 펼침으로써 디아코니아 정신을 잘 구현했다. 교회연합 봉사의 모델을 제시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본다.
-한국교회의 대대적 연합 사역은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이어졌다. 많은 교회와 기독 NGO 등이 현장에 달려가 헌신적인 활동을 펼쳤다. 일부에서는 평가가 엇갈리기도 하는데, 지난 4개월여 교계의 섬김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종생 목사=기독교연합봉사단을 중심으로 한 초기 긴급구호 활동은 돋보였다. 교계 봉사단체들과 지역교회(진도군교회연합회)가 함께 피해자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는 등 돌봄 사역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범기독교적 조직 구성을 통한 교계 전체의 연합과 연대를 이끌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교계 일부의 정치적 행보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이 목사=교계가 자꾸만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무엇인가 물질적으로 지원하려 하고,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는 것 같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 보니 주는 사람(시혜자)만 부각되고 받는 사람(수혜자)의 자존심과 입장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주고 마음을 나누는 좀 더 세심한 ‘인간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했지 않았나 싶다.
△김한호 목사=교단별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연합 활동의 가치를 예전만큼 구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세월호 사고가 정치적 문제와 겹쳐지면서 교계의 연대 활동에 부담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떤 정치·신학적 입장에 서 있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묵묵히 돕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나눔·섬김 활동이 갈수록 활발해지는 것 같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디아코니아 흐름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이 목사=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적으로 이뤄지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교회의 사회봉사가 지나치게 프로그램화 내지는 프로젝트화되어 가는 부분도 감지된다. 그러다 보니 섬김 대상이 되는 이들의 실질적 욕구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접근하는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도 발생하고 있다.
△김종생 목사=사회복지법인 설립 같은 제도적 사회복지사업과 더불어 어린이집이나 지역아동센터 등 수탁사업도 지역 교회에서 활발한 편인 것 같다. 최근 들어서는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통한 섬김 사역이 눈길을 끌고 있다. 교회와 목회자들마다 섬김 사역을 교회의 핵심 사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김한호 목사=디아코니아 사역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개교회 중에서도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디아코니아 사역을 펼치는 곳도 많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점점 더 다양해지고 세분화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유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섬김의 주체와 대상 간에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못하면 사역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지금 교회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디아코니아 사역 가운데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김종생 목사=어느 한 교회나 특정 교단이 백화점식으로 모든 사역을 안고 가겠다는 욕심을 내려놔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봉사 주체가 아닌 수혜자를 중심으로 한 섬김 전략과 실천이 우선시돼야 한다. 섬김 대상 선정이나 필요한 사역의 선별 등을 위해서는 현지 구·군청이나 동·면사무소 등 관공서 같은 유관기관들과 섬김 단체 간의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이 목사=중대형 교회 일변도의 사역에서 탈피해야 한다. 현재 교계에서 펼쳐지는 나눔과 섬김 사역의 상당 부분은 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한 대형 교회에 쏠려 있다.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들의 경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보니 전도 중심의 목회밖에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섬김 사역에서도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중대형 교회는 주변의 작은 이웃 교회들과 함께 펼칠 수 있는 섬김 사역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디아코니아 사역이 활발한 해외 사례에서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부분은 없는가.
△김한호 목사=독일의 경우를 살펴보자. 독일은 사회복지 업무에 있어서 민관 협력 비율이 80%에 달한다. 간단히 말하면 정부가 복지 업무의 재정적인 부분을 뒷받침해주는 대신 나머지는 종교 기관에서 담당하도록 맡긴다. 각각의 종교적 색채를 띠고 도울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그만큼 종교계를 신뢰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독일은 자원봉사 인력이나 네트워크 등 민간 부문이 갖고 있는 전문성을 인정하고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반대에 가깝다. 정부가 주도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빨리 바꿀 필요가 있다.
△김종생 목사=민관 협력 부분에 있어서 유럽 쪽은 복지기관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돈줄’을 쥐고 있는 정부의 지도와 감독 위주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 쪽의 방식이 꼭 정답은 아니겠지만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나눔과 섬김 사역은 이제 빠질 수 없는 목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디아코니아 사역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 달라.
△김한호 목사=남을 돕는 것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특히 기독교의 나눔과 섬김 사역에 있어서는 ‘전문성’과 ‘고백성’이 함께 구비돼야 한다. 체계적인 지식과 훈련을 통한 전문적 섬김(전문성)이 이뤄져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신앙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백성)는 뜻이다. 고백성이 없다면 그저 사회복지 행위에 불과하다.
△김종생 목사=나눔과 섬김이 전도나 교회 성장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교회의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섬김 그 자체로 지역사회와 이웃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순수한 섬김이 전도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특정한 목적과 의도를 둔 섬김은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이 목사=수혜자 중심의 사역에 초점을 둬야 한다. 교회가 먼저 ‘하고 싶은’ 섬김 활동을 정해놓고 사역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지역사회 내 섬김이 필요한 대상의 요구를 파악한 뒤 접근하는 것이 순서다. 이와 함께 섬김 사역은 섬김 대상의 실존적 문제로까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사회복지’에 이어 ‘영적 복지’로까지 이어져야 교회의 섬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이다.
진행·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한국교회,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3부] (5) 한국교회 디아코니아 사역 현황 점검 좌담회
입력 2014-09-04 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