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하는 녹색성장] 늦추고 또 늦추고… 대기업에 끌려다닌 정부

입력 2014-09-03 04:40
정부가 배출권거래제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고 저탄소차협력금제 시행을 2020년 이후로 미룬 것은 대기업 등의 입장이 반영된 조치다. 정부가 대기업에 끌려다니며 정책 혼선을 자초하면서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기업이 져야 할 부담을 가정이나 상업 부문으로 전가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정책 신뢰의 문제가 가장 크다. 저탄소차협력금제는 당초 2013년 7월 1일 시행 예정이었으나 자동차 업계의 반발에 밀려 2015년으로 연기됐었고, 이번에 다시 ‘업계 부담’을 이유로 2020년 이후로 미뤄졌다. 현 정권에서는 시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저번에도 늦췄고 이번에도 늦춰줬으니 다음에도 늦춰질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정부의 발표를 믿고 온실가스 저감 기술을 개발하는 등 착실하게 준비해 온 기업에는 역차별이 된다.

배출권거래제는 계획대로 내년에 시행되지만 기업 부담을 대폭 완화해줬다. 모든 업종에서 감축률을 10% 완화하고 발전 분야 등 부담이 큰 업계는 더욱 낮춰줬다. 환경운동연합과 에너지시민회의 등 환경단체 분석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상 제시된 양보다 5800만t을 더 배출할 수 있게 됐다. 2017년까지 산업계 전체가 감축키로 한 양의 48%, 가정·산업 부문 감축량의 80%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기업이 온실가스를 더 배출하도록 둔다면 두 가지 선택지가 남는다. 가정·상업 부문에 부담을 떠넘기거나 기업 부담을 추후로 미루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BAU)’ 대비 30%를 줄이기로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더구나 저탄소차협력금제가 2020년 이후로 도입이 연기되면서 다른 분야의 부담이 더욱 늘게 됐다. 만약 가정·상업 부문에 부담을 넘길 경우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며, 기업 부담을 미룰 경우 기업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박근혜정부가 차기 정부로 어려운 결정을 미뤄버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발표 중 주목되는 부분은 BAU 재검토다. 미래에 대한 예측을 달리해 감축량을 줄여보려는 의도로 풀이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산출한 BAU는 7억7600만t이지만 전경련 등은 8억9900만t 정도라고 주장해 왔다. 전망치가 클수록 배출 가능한 온실가스량이 많아져 기업에 유리해진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당초 정부가 설정한 7억7600만t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이었다”며 “고무줄처럼 BAU를 늘려버리면 온실가스 목표를 설정하는 의미가 사라지며 이는 국제 망신”이라고 주장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