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만 해도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은 대부분 흰색이었다. 그래서 ‘백색가전’이라고 불렀다. TV 오디오 등은 ‘갈색가전’으로 불렸는데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무늬 없는 어두운 색이 전부였다. 외관보다는 성능이 중시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가전제품이 예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가전업체들은 TV와 생활가전에 예술을 입히고 있다. 기능과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고 같은 제품군 안에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제는 겉모양도 ‘전쟁터’가 됐다. 겉으로 드러나는 미적 가치와 제품이 가진 감수성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가전업계는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국제가전박람회(IFA)를 필두로 명품 가전의 본고장인 유럽 시장에서 제품의 예술적 요소를 크게 강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유럽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명 아티스트 엠마누엘 로메프, 클라스 파렌, 안나 쾨페세스의 작품을 도입했다. 드럼세탁기 청소기 등 제품들의 주요 콘셉트와 장점을 일러스트 작품으로 표현한 ‘아트 갤러리’를 IFA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TV에도 예술을 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TV는 디스플레이 기술이 크게 향상되면서 예전보다 더욱 프리미엄 제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TV라는 본연의 기능 외에 장식품 가구 등의 영역으로 손을 뻗고 있는 것이다.
LG전자는 IFA에서 오스트리아 프리미엄 주얼리 브랜드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디자인을 적용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공개한다. 제품의 스탠드 왼쪽과 오른쪽에 3가지 다른 크기의 460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수작업으로 장식했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아티스트 미구엘 슈발리에와 손잡고 곡면 초고화질(UHD) TV에 디지털 아트 ‘곡면의 기원(Origin of the Curve)’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가전업계가 예술작품에 주목하는 것은 기존의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이미지를 프리미엄 이미지로 대체하기 위해서다. 같은 성능의 제품이라면 집에 들였을 때 공간을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쪽에 손이 간다는 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이미 국내 업체들은 꾸준히 예술가들과 협업해 왔다. LG전자는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와 함께 디오스 냉장고, 광파오븐 등을 만들었다. 삼성전자는 팝아트 동양화 조각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갤럭시 노트’로 완성한 작품을 선보이는 ‘갤럭시 노트 아트 페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2일 “예술가와 협업을 통한 디자인이나 이벤트를 통해 제품과 브랜드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서 “이미 우리 제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업체들은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요소를 더욱 발전시켜 제품을 차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기획] 가전제품, 예술을 입다… 딱딱한 이미지 탈피 글로벌 소비자 감성 자극
입력 2014-09-03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