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온실가스 감축 약속 이행포기가 녹색성장인가

입력 2014-09-03 03:50 수정 2014-09-03 14:24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대상 기업의 감축 의무를 대폭 완화키로 했다. 역시 내년 1월 시행키로 돼 있는 저탄소차협력금제도는 2020년 말까지 시행을 유예한다고 2일 발표했다. 두 제도는 이명박정부에서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국회가 관련법까지 통과시켰고, 박근혜정부도 대선 공약과 올해 초 국무회의 등에서 내년 시행 방침 확인까지 했다. 그 사이에 기존의 사회적 합의를 변경할 만한 특별한 사정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두 제도를 무력화하려 한다면 이 정부를 과연 정상적 조직이라고 봐야 할지 의문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는 내년부터 시행되지만 업계의 부담 증가라는 우려를 반영해 전 업종에 걸쳐 감축률을 10% 완화하고, 배출전망치(BAU)를 재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 시행 시기는 이명박정부 때 2013년에서 2015년으로 한 차례 연기됐고, 감축 할당량도 이미 삭감해 줘 ‘대기업 특혜’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기업의 부담 수준에 대해 산업계와의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그 사이에 경제 사정이 더 나빠진 것도 아니다. 이 정부는 녹색성장이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건 추진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금 BAU를 재산정한다면 2008년 이명박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BAU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한 국제적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녹색성장 정책을 주창했고, 그 명분을 들어 기후변화기금(CCF) 사무국을 인천에 유치하기까지 해 놓고 이제 와서 감축목표 이행 시간표를 변경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자초하는 것이다.

시행을 연기하기로 한 저탄소차협력금제는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많은 차량 구매자에게 부담금을 부과하고 적은 차량 구매자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의 중·대형차 선호도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다. 이 제도를 시행하면 중·대형차 수요는 자연스레 줄고 경·소형차 수요는 늘면서 이산화탄소와 대기오염물질을 감축할 수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배출권거래제와 저탄소차협력금제를 동시에 실시하면 국내 산업에 지나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는 현실을 호도하는 발언이다. 자동차 제조업 자체는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산업이 아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위원들은 정부 방침이 국회 입법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선언하고 저탄소차협력금제 시행 연기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산업계에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유예기간을 굳이 줘야겠다면 차라리 배출권거래제를 연기하고, 저탄소차협력금제를 당장 시행하는 것이 그나마 덜 나쁜 선택이라고 본다. 협력금제의 경우 당장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분명하게 기대되고, 자동차 업계의 기술 개발도 촉진할 것이다. 정부와 산업계의 견제·균형 관계를 위해서는 당근만이 아니라 채찍도 필요하다. 그리고 환경정책은 규제가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