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발표된 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SAT) 개편 내용이 뒤늦게 중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지난달 20일자 칼럼이 불을 댕겼다. 하버드 법학대학원을 나온 켈리양은 “SAT 새 개편안이 성공한다면 미국은 체계적으로 중국 학생 수십만명의 가치관이나 믿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TV 드라마나 유력 정치인의 강연이 아니라 바로 시험을 통해서다”고 지적했다.
SAT를 주관하는 미국 칼리지보드(CB)는 2016년부터 시행될 개편 내용 중 독해 지문과 관련해 미국 독립선언문이나 권리장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쓴 ‘내겐 꿈이 있어요’ 등의 저작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지문에 담기는 핵심 이슈는 “자유 정의 인권”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다.
신화통신도 최근 SCMP 칼럼을 인용하면서 “미국의 가치 체계가 중국 학생들에게 주입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중국 유학생은 23만5000명에 이른다. 올해는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SAT 개편을 앞두고 중국의 영어교육 시장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미 독립선언문이나 권리장전 등은 이미 SAT 대비 참고서의 맨 앞을 차지하고 있다. 베이징 신둥팡학원 류하이퉁 원장은 북경청년보와의 인터뷰에서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생들은 관련 문서들의 문장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암기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과 지면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시나웨이보의 한 블로거는 “새 SAT 시험이 중국 청년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바꿔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대 중문과 장이우 교수도 자신의 웨이보에 “미국이 자신들이 인정하는 것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인정하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칭화대 중미관계연구센터 장쉬둥 교수는 “사실 미국의 건국 문헌들은 이미 내용이 공개돼 있고 중국 대학 영어 시험에도 출제된다”면서 “방어만 할 게 아니라 학생들의 독립적 사고 능력을 높이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 속에 중국 대학에 대한 이념 통제도 강화되고 있다. 홍콩 언론들은 2일 공산당 이론지 월간 구시(求是) 9월호를 인용해 “베이징대·상하이 푸단대·광저우 중산대가 학생과 교수에 대해 ‘이념 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해당 내용은 각 대학 공산당 위원회의 성명 형태로 발표됐다. 베이징대는 온라인 여론 감시를 위해 24시간 모니터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푸단대는 45세 이하 젊은 교수를 대상으로 사상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젊은 교수에 대한 평가 방식도 재검토될 예정이다. 중국 당국은 올 들어 최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과 언론에 대해서도 사상 통제를 강화해 왔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기획] 美 SAT 개편… 중국 “미국식 가치관 주입” 시끌
입력 2014-09-03 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