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두 번째 추석 명절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각계각층에 격려 선물을 ‘조용히’ 보냈다. 이번 추석 선물은 육포(강원 횡성)와 잣(경기 가평), 대추(경남 밀양) 세트다.
선물을 보낸 대상자는 지난해와 비슷한 9000여명 선으로 알려졌다. 대상에는 전직 대통령과 5부 요인, 정계 원로, 국회의원, 장·차관, 경제단체장, 국가유공자, 종교·언론·여성·교육·문화예술·노동계 인사들과 시민단체 등이 포함됐다. 또 독거노인과 중증장애인, 한부모 가정, 가정위탁보호아동, 소년소녀가장 등 사회적 배려계층에도 골고루 선물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불교계 인사들에게는 육포 대신 견과류, 소년소녀가장들에게는 학용품 세트가 보내졌다고 한다. 가격은 2만∼3만원대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예년과 달리 올해는 박 대통령의 선물 발송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역대 청와대가 해마다 대통령 명절 선물을 공지해 왔던 전례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박 대통령 취임 첫해인 지난해에도 김행 전 대변인이 별도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하지만 올해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 여야 대치 정국이 장기화되는 상황을 두루 감안해 비공개로 가닥을 잡았다. 또 대통령 선물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차원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2일 “대통령이 최대한 많은 분에게 선물을 보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여러 상황이 종합적으로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조용한 선물을 보낸 데는 박 대통령의 의중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릴 때부터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박 대통령은 선물도 간소한 것을 좋아한다. 선물은 부담이 없되 요긴하게 사용돼야 한다는 ‘선물관(觀)’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은 10여년 전 펴낸 책 ‘나의 어머니 육영수’에서 선물에 관한 일화를 밝힌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어렸을 때) 친척이 해외여행길에서 산 것이라며 저희들(박 대통령 남매)에게 선물을 줄 때면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친척을 나무랐다. 남이 안 가진 것을 갖는 것은 교육상 좋지 않을 뿐더러 건전한 시민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때는 “남보다 좋은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가진 적이 없다”고 유년시절을 회고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올 추석 선물은 경기·강원·경남산(産) 농축산물에서 보듯 국민통합과 농촌 살리기 등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지역 안배도 필수다. 지난해 추석 선물은 전남 장흥(육포), 대구(찹쌀), 경기 가평(잣)산이었다.
대통령이 보내는 명절 선물은 사실 통치행위 성격이 짙다. 설, 추석을 맞아 대통령이 각계각층 인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수단으로 많이 활용돼 왔다. 역대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농축수산물이 가장 많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각 지역에서 나는 황태와 재래김, 대추 등을 각계에 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복분자주, 소곡주, 이강주 등 민속주가 대부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주로 김, 한과 등 간소한 선물을 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원 시절부터 대통령 재임 시까지 해마다 경남 거제산 멸치(일명 YS멸치)를 선물로 보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인삼 세트를, 노태우 전 대통령은 현금을 주로 선물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정치 인사이드-대통령의 추석 선물] 횡성 육포·가평 잣·밀양 대추… ‘조용히’ 보낸 이유는
입력 2014-09-03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