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해외여행자 면세한도 600달러

입력 2014-09-03 03:45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 출국은 그 자체가 특권이고 선망이었다. 업무 출장, 연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해외근무는 출세의 징표였다. 김포공항은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내고 맞는 인파로 늘 북적였다. 나이든 시골 부모들까지 합세한 대가족의 눈물 환송과 환영은 드물지 않은 풍경이었고, 헹가래나 구호를 외치며 장도(壯途)와 금의환향을 축하하는 모습도 심심찮았다.

해외여행자유화 초기 물 건너가는 사람들에게는 출국의 설렘 못지않은 즐거운 부담이 있었다. 바로 ‘선물’이다. 가족은 물론 회사 동료, 더러는 친지와 지인들에게도 귀국 선물은 필수였다. 아이템도 대충 정해져 있었다. 아내에게는 화장품, 동료와 친지, 지인들에게는 양주, 담배, 넥타이, 볼펜, 열쇠고리가 주로 건네졌고 자녀들에게는 초콜릿이 인기였다. 티스푼과 냉장고에 붙이는 관광지 기념품도 많이 사왔다.

그러다보니 해외여행자 휴대품 면세 한도인 30만원을 넘기기 일쑤였다. 시슬리, 샤넬 같은 유명 브랜드 화장품 1∼2개만 사도 10만원이 넘었다. 귀국 비행기에서부터 세관의 눈을 어떻게 피할까 가슴 콩닥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88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 4435달러, 89년 5418달러 때의 얘기다. 당시 대한민국은 1달러가 아쉬웠다. 2014년 7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 3680억3000만 달러(세계 7위), 2013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3837달러(세계 33위)로 요즘 대한민국에는 과거에 비해 달러가 넘쳐도 너무 넘친다.

오는 5일부터 휴대품 면세 한도가 600달러로 높아진다. 76년 10만원, 88년 30만원(당시 환율 기준 400달러), 96년 400달러로 고정된 후 사실상 26년 만에 바뀐 것이다. 그동안 몇 차례 상향 조정이 거론됐으나 ‘내수산업 보호와 위화감 조성 우려’란 지적에 무산되다 지난달 초 마침내 관세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시행을 앞두게 됐다.

사실 휴대품 면세 한도 제도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2년 한해동안 여행객 66만7000명의 휴대품을 검사한 결과 43.6%인 29만1000건이 적발됐다. 둘 중 하나정도가 한도를 초과할 만큼 일상화됐다. 검사 비율은 전체 입국자의 3∼4%에 불과했고 가산세 규모도 지난해 21억원에 그쳤다. 진작 개선됐어야 할 규제였다. 오랜 기간, 숱한 논의 끝에 바뀐 이 제도가 해외여행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자못 궁금하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