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오바마의 ‘운명의 두 달’

입력 2014-09-03 03:1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베이지색 양복을 입고 나온 게 논란이 된 모양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공습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심각한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오바마가 속으로 ‘정말 대통령 노릇 어렵다. 옷도 한번 못 바꿔 입겠네’ 했을 법하다.

개인적으로 옷차림보다는 전에 비해 살이 빠지고 초췌한 얼굴에 더 눈길이 쏠렸다. 밝은 색 옷에 대비돼서인지 광대뼈가 더 두드러지고 볼은 움푹 들어가 보였다. 지난달 초 워싱턴DC 교외의 한 행사장에서 연설을 지켜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눈에 띄게 늘어난 흰머리와 윤기 없는 목소리에서 피곤에 절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오바마의 심정이 이해된다. 한마디로 되는 게 없는 형국이다. 수년 전부터 방치한 시리아 사태는 IS(이슬람국가)라는 괴물을 낳았다. 9·11테러를 감행한 알카에다는 이에 비하면 ‘양순한’ 축에 든다는 게 미 정보기관의 평가다. 중동의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 대한 테러 위험이 현실로 다가왔다.

러시아는 사실상 우크라이나 반군을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대리전을 치르는 형국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경고를 깡그리 무시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중국은 미군 정찰기에 초근접 비행하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는 모양새다. 영토 분쟁을 벌이는 동남아 인접국들은 점점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심지어 북한까지도 미국 시민을 3명이나 억류한 채 미국의 특사를 수차례 문전박대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출구전략도 뒤뚱거린다.

이런 ‘외환(外患)’ 속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빠짐없이 챙기는 게 있다. 민주당을 위한 정치자금 모금행사다. 여름휴가 중에도 모금행사 참석은 빠뜨리지 않았다. 물론 11월 4일 열리는 중간선거의 ‘실탄’ 마련을 위해서다.

대부분 선거분석가들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에 이어 상원의 과반 의석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한 현재도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프로젝트가 하원의 벽에 막혀 하나도 실현되지 않는 실정이다. 그래서 오바마가 ‘실행은 없고 말만 한다’는 ‘나토(NATO·No Action Talk Only)’ 정치인 대열에 이미 들어섰다는 평이 나온다. 상원까지 공화당이 장악하면 고위 관리에 대한 인사권과 대외 정책 추진에도 상당한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을 위시한 차기 대선주자들로 권력과 자금이 급속히 쏠릴 것이다.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승자는 물론 지지율도 족집게처럼 맞춘 네이트 실버의 분석은 귀 기울일 만하다. 8월 초 전망에서 그는 올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51석, 민주당이 49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오바마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는 생물(生物)이라지 않는가.

실버도 여지를 남겼다. 역대 중간선거에서 9월 이후 막판 판세 변화가 곧잘 있었다면서 최선의 경우 민주당이 현재의 55석(친민주 무소속 포함)에서 1∼2석만 잃는 ‘선방’을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앞으로 두 달간 전 세계는 ‘식물 대통령’으로 남지 않기 위해 선거운동에 혼신의 힘을 쏟는 미국 대통령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불타는데 내정에 몰두하는 대통령에게 미 국민이 얼마나 힘을 실어줄지 관심거리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