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김새와 이름 참 잘 어울려
낚시를 하다 보면 여러 어종의 물고기를 낚는다. 이름을 모르는 처음 보는 고기를 낚으면 선배 낚시꾼에게 물어보거나 어류도감을 찾아 이름을 꼭 확인했다. 잡혀서 죽은 것도 억울할 텐데, 그래도 내가 이름 정도는 알아주어야 조금이라도 덜 원통할 것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토종 물고기들의 이름이 참 다양하고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쏘가리, 꺽지, 퉁가리, 쉬리, 버들치, 납자루, 마자, 갈겨니, 미꾸리 등의 민물고기들은 이름을 듣고 고기를 보면 생김새와 이름이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바다물고기 이름도 마찬가지다. 노래미, 전갱이, 도다리, 쏨뱅이, 볼락, 아귀, 매퉁이, 보구치, 우럭, 도루묵 등도 친근감이 가는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 물고기 중에서 아주 점잖은 이름을 가진 녀석이 있다. 겨울철부터 봄까지 동해안에서 낚시로도 잘 잡히는 임연수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임연수어는 주로 구이로 먹지만 특히 껍질이 맛있어 강원도 지역에서는 임연수어 껍질 쌈밥을 별미로 친다.
실명제 생선 임연수어·군평선이
실학자 서유구가 1820년 경 저술한 어류학지 ‘난호어묵지’에는 임연수(林延壽)라는 사람이 이 고기를 잘 낚았다고 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임연수어라 적고, 한글로 ‘임연슈어’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민간 전설에는 강원도의 한 천석꾼이 워낙 임연수어 껍질을 좋아해서 그것을 먹다가 가산을 탕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사람 이름이 바로 임연수였다는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든 물고기가 사람의 이름을 덮어쓴 것이 된다.
여수 지방에 가면 ‘샛서방고기’라는 생선이 있다. 워낙 맛이 좋아 본 서방에게는 안 주고 정분이 난 새 서방에게만 준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이 생선의 공식 이름은 ‘군평선이’다. 지역에 따라 금풍쉥이, 딱돔으로도 불리는 이 생선 이름도 유래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여수감영을 순시했을 때였다. 장군이 식사 때 밥상에 올라온 생선이 워낙 맛이 있어 이름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누구도 생선 이름을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장군이 음식상을 차려온 관기의 이름을 물으니 ‘평선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군께서 점잖게 “앞으로 이 생선 이름은 평선이로 불러라”고 하명하셨다고 한다.
그 후에 이 생선은 구워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해서 ‘군평선이’로 불렸다는 것이다. 남해안에서 도다리나 민어 낚시를 하다 보면 가끔 잡히는 군평선이는 크기는 작아도 구워 먹어 보면 대단히 맛있다. 워낙 맛이 좋아 장군을 끌어들인 것 같지만 어쨌거나 임연수어와 더불어 사람 이름으로 호사하고 있는 실명제 생선이다.
이와 반대로 좀 슬픈 사연의 이름을 가진 물고기도 있다. 왕이 전란을 피해 동쪽 지방으로 피신을 갔을 때 올라온 생선이 ‘묵’이었다. 워낙 맛이 있어 그 뒤 이 생선을 ‘은어(銀魚)’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후일 궁으로 돌아와 다시 그 생선을 맛보니 맛이 형편없었다. 임금께서 “다시 묵으로 불러라”해서 ‘도로묵’이 되었다는 것이다.
선조 때의 문신 이식은 이 도루묵을 한자로 ‘환목어(還目魚)’라 하고 같은 제목의 시를 지었다. “목어라는 이름 가진 물고기가 있었나니…(중략) 금세 명호가 깎여 도로 목어로 떨어지며/ 순식간에 버린 자식 취급받게 되었어라/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 상관 있으리요/ 귀하고 천한 신분, 때가 결정하나니/ 명칭이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 버림받았다 해도 그대 탓이 아니로세.”
사람들이 무엇으로 물고기 이름을 짓든지 간에 ‘푸른 바다 깊숙이 가슴 펴고 헤엄치며/ 유유자적하는 것이 물고기의 본령(洋洋碧海底 自適乃其宜·이상현 역)’일 것이다.
하응백 문학평론가·휴먼앤북스 대표
[청사초롱-하응백] 물고기 이름 이야기
입력 2014-09-03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