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문단열 (8) 새 소명 ‘청년사역’ 위해 2010년 11월 교회 개척

입력 2014-09-03 03:43 수정 2014-09-03 15:42
문단열 전도사가 2010년 3월 발표한 음반 속지에 실린 그의 사진.

사람의 타고난 성향은 상인(商人)과 장인(匠人)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상인은 자신이 만든 상품이 100점 만점이 아닌 90점 수준이어도 상품만 잘 팔리면 제품 개발보다 판매에 중점을 둔다. 반면 장인은 품질을 100점으로 끌어올리는 데 열중한다. 돈이 모이면 곧바로 제품 개발에 투자한다.

그렇다면 나의 성향은 어느 쪽일까. 자평하건대 나는 상인보다는 장인에 가깝다. 이런 사람들은 사업을 하면 안 된다. 사업으로 많은 빚을 지고, 새 업체를 차려 재기에 성공했지만 나는 빚을 갚기보단 교육 콘텐츠 개발에 돈을 쏟아부었다. 사업이 잘되면 잘될수록 더 큰 욕심이 났다.

인터넷 영어 강의 업체인 ‘펀글리시’는 2003년을 기점으로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투자를 계속했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2007년 결국 나는 모든 사업을 접기로 했다. 그때 내가 정한 철칙은 이랬다. ‘내가 몸으로 부딪혀 얻는 수입만으로 살아가자.’ 전국 어디서든 나를 부르는 곳이 있으면 달려갔다. 지방 강연이 한 달에 많게는 20회가 넘었다.

2010년 3월에는 음반을 발표하며 가수로도 데뷔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음악을 좋아했다. 10대 시절엔 성악가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축농증이 심해 성악을 전공할 순 없었다. 음반 취입은 어린 시절부터 꿈꾼 소박한 장래 희망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 새로운 삶을 계획했다. 교회를 개척하자는 거였다. 약 10년 전, 나는 인천온누리교회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이 교회에서 사역하던 공진수 목사님 부탁을 받아 섰던 무대였다. 특강 요청을 받고 처음엔 내가 교회 강단에 설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 거절했는데, 공 목사님의 거듭된 부탁에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교회 청년들 앞에서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설교라기보단 내가 살면서 겪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간증의 무대였다. 그런데 강연이 시작되고 어느 순간부터 청년들이 하나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다 나도 그만 울어버렸다.

그때부터 청년 사역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교회 개척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런데 사업을 그만두고 이런저런 특강 무대를 전전하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혼자 기도를 하고 있는 내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청년들을 위한 교회를 개척하라고.

나는 하나님께 물었다. ‘교인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장소도, 돈도 없는데 어떻게 교회를 짓습니까.’ 하나님의 답변은 간단했다. ‘교인 돈 장소가 없다고 교회를 개척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결국 나는 교회 개척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이전부터 알고 지낸 서울 온누리교회 청년 성도 3명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교회를 개척할 생각인데 같이 해줄 수 있지?”

교회 장소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한 출판사에 부탁했다. 출판사는 “젊은 친구들과 성경 공부를 할 장소가 필요하다”는 나의 요청에 기꺼이 장소를 내줬다. 이 출판사는 그동안 내 영어교재 출간을 맡았던 곳이다. 결국 출판사 건물 지하 공간에서 2010년 11월 28일 개척 예배를 열었다. 교회 이름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교회’라고 지었다. 계속 출판사에 신세를 질 수 없어 6개월 뒤엔 서울 합정동 한 건물 지하실을 임대했고, 지금까지 매주일 이곳에서 예배를 드린다.

개척한 지 4년을 앞두고 있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교회는 조금씩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성도 수는 50명 정도이며 대부분이 20대와 30대다. 태어나서 교회를 다녀본 적 없는 사람이 80% 가까이 된다. 나에게 성도들은 자식과도 같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