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회복세가 부진하지만 디플레이션은 보이지 않는다.”(지난 1월 24일·다보스포럼)
“유로존의 인플레 전망이 매우 낮다. 가계와 기업이 소비·투자를 미루는 전형적 ‘디플레이션 사이클’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지난 5월 26일·ECB포럼)
◇ECB는 양적완화 시행=올 들어 유럽중앙은행(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의 말은 점점 무거워진다. 마침내 지난 22일 잭슨홀 미팅에서는 “유로존 경제 부양을 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시장은 이 발언을 디플레이션 시인으로 읽었다. 이탈리아 은행 유니크레디트의 마르코 발리 유로존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처음으로 중장기적인 인플레이션 하락을 인정한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드라기 총재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경제지표는 정체된 물가다. ECB가 2%를 목표치로 하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10월부터 계속해서 1%를 밑돌고 있다. 지난달에는 0.3%를 기록, 최근 5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를 타개할 ‘모든 가능한 수단’ 중 첫손에 꼽히는 것은 금리인하다. 씨티그룹 등 각국 투자은행(IB)은 잭슨홀 미팅 이후 “ECB가 다음 달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늦어도 내년 1분기 초까지 양적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푸는 작업)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드라기 총재가 공격적 자산 매입을 시사하자 “일본 아베노믹스와 같은 정책적 접근”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추가 기준금리 인하 있나=한국 경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최근 21개월 연속 1%대를 기록 중이다. 한은보다 소폭 보수적인 집계치를 내놓는 네덜란드의 ‘인플레이션eu’는 한국 CPI가 올해 평균 1.45%를 기록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월별 비교치로 보면 CPI 상승률이 전달에 비해 마이너스를 기록한 달도 최근 1년 사이 세 차례 있었다.
장기침체의 고착화를 두려워하는 금융권과 경제학계에서는 ECB를 참고한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삼성선물 박동진 연구원은 “시장의 추가 인하 기대심리는 이성적이며, 공은 다시 한은으로 넘어갔다”고 강조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주 디플레이션을 언급한 점도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유진투자선물 김대형 연구원은 “7월 산업활동 결과도 경기회복 자신감을 심어주지 못했고, 최 부총리의 발언으로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가 재부각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를 더욱 늘릴 수 있다는 부작용은 한은의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열쇠를 쥔 한은 이주열 총재의 태도도 적극적 인하보다 신중한 입장에 가깝다는 해석이 많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지난달 인하 당시 이 총재가 동결 의견 소수위원이 1명이었다고 이례적으로 밝힌 이유는 그의 내심도 동결이었음을 방증한다”고 주장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기획] 동결하자니 디플레 위기 압박, 내리자니 가계빚 부담… ‘추가 금리인하’ 고민 깊은 한은
입력 2014-09-02 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