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송홍선] 새 퇴직연금제도 잘 되려면

입력 2014-09-02 03:48

정부가 퇴직연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가입을 의무화하고, 운용규제를 완화하며, 퇴직연금시장 지배구조를 개편해 수요자 중심의 퇴직연금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이 골자다. 방향이나 내용 면에서 실로 메가톤급인 이번 대책은 노후불안과 저금리 경제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도전들에 대한 퇴직연금 차원의 대응이라고 할 만하다.

도입 10년이 된 퇴직연금 가입률이 고작 14%에 머무는 상황은 퇴직연금제도의 정당성, 나아가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에 대한 신뢰를 의심하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퇴직연금의 가입을 의무화한 것은 퇴직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노후 안전망 강화를 위해 특단의 조치로 보인다. 저금리 역시 사각지대 못지않게 연금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연금자산의 과소축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경제 때 만들어진 퇴직연금자산의 운용규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연금자산 배분을 결정하는 퇴직연금 지배구조 역시 저금리가 고착화돼가는 경제상황에 맞게 자산 배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합리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경제구조가 바뀌면 운용규제정책 역시 변해야 한다. 이번에 위험자산 총투자한도를 선진국과 달리 70%로 설정한 것은 투자손실 우려와 노후자산 과소축적 우려를 동시에 고려한 정책 선택으로 평가된다. 기금형제도와 자산운용위원회 도입 역시 저금리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퇴직연금 자산운용에 객관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제도적 발판이 될 것이다.

이번 퇴직연금 제도 개편은 과거의 퇴직금제도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의 퇴직연금은 무늬만 퇴직연금일 뿐 퇴직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연금이면서도 연금자산 운용에는 무관심한 이상한 연금이었으며, 퇴직 때도 연금보다 일시금으로 받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다. 더구나 연금 사업자의 대리인 문제를 규율하지 못해 자사 금융상품을 소화하는 판매창구가 돼왔다. 이번 대책은 퇴직연금이 안고 있는 이 같은 퇴직금 관성들을 타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제도 발전이 시장의 발전을 저절로 담보하지는 않는다. 제도를 수용하는 참여자의 자세와 능력이 변수다. 이번 대책은 누가 봐도 연금제도 발전과 노후소득보장체계 면에서 긍정적이다. 퇴직연금 발전을 위한 제도적 전환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장점은 살리고 부작용은 줄이는 이해관계자의 생산적 논의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주들은 가입 의무화 로드맵에 맞춰 재무정책을 재검토하고 후불임금 성격의 퇴직급여를 과감하게 사외에 적립하도록 결단해야 한다. 정부는 퇴직연금 전환과정에서 기업의 재무 불확실성을 완화할 수 있는 과감한 지원과 더불어 투자위험을 관리하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존 연금사업자 또한 단기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퇴직연금시장이 한 단계 도약한 이후 펼쳐질 미래지형 속에서 최적의 포지션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체질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근로자가 투자손실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운용규제가 풀렸다고 위험자산 배분이 저절로 늘지 않을 것이며 근로자의 노후자산이 저절로 쌓이지도 않는다.

근로자가 안정성과 수익성을 포괄해 노후자산 배분을 택하게 하는 힘은 결국 시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저금리도 싫고 손실위험도 싫은 근로자의 양가적 감정을 파고들 수 있는 퇴직연금의 상품 및 서비스 혁신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금의 일반펀드와는 위험관리와 운용철학이 구별되는 퇴직연금 펀드가 만들어져야 한다. 불완전판매를 조장하는 밀어내기식 펀드 판매 관행과는 분명 차별화되는 퇴직연금 권유서비스 경쟁이 시작돼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제도와 시장은 비로소 같이 발전할 수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