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통합은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뤄내야 할 긴요한 국정 과제다. 이념 계층 지역 세대간 갈등이 심각해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점을 중시해 지난해 7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위원장에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국민통합은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자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반,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 2개월을 넘긴 지금 국민통합은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여야 정쟁이 격화되면서 대선 때 이상으로 국론이 양분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며,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광옥 위원장을 만나봤다. 인터뷰는 지난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거리 인근 S타워(종로구 새문안로 82) 9층 위원장실에서 가졌다.
-최근 들어 박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100% 대한민국’ 달성이란 대선 공약에 대한 박 대통령의 생각에 변화가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부분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오히려 통일 준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대통합의 분위기를 한층 띄우는 상황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만 국내외 환경이 변화무쌍해 아직 좋은 여건이 성숙되지 못한 것은 아쉽게 생각합니다. 통합은 공기와 같아서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방 큰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갈 계획입니다.”
-박 대통령이 소통을 잘 하지 않아 국민통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과거 저의 대통령 비서실장 경험에 비춰보면 대통령은 어차피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자리인데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언론에 비치는 것, 오픈되는 것만 보고 소통이 된다, 안 된다 판단해서는 곤란합니다. 박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어떤 누구와도 쉽게 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위원장께선 위원회 업무와 관련해 대통령과 소통이 잘 됩니까?
“여러 통로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의견 개진을 원활하게 하고 있습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존재감이 별로 없다고들 합니다.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희는 시골 온돌방 구들장처럼 천천히 데워지지만 그 온기가 오래가도록 통합의 기반을 확충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2개월 동안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고 각계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6개 광역자치단체와의 간담회, 다문화 및 북한이탈주민 거주지 현장방문, 그리고 각종 국민공감 토론회와 공청회 등의 행사를 가졌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작은 실천-큰 보람운동’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습니다. 정부와 종교단체, 64개 시민사회단체와 힘을 합쳐 쉽고 기본적인 것들을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약속엽서 쓰기 캠페인’ 같은 행사를 통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의식 개혁에 동참하도록 유도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국론분열 조짐이 있는데 위원회가 할 일은 없습니까?
“오래 정치를 해왔고, 지금도 공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럽다는 생각입니다. 철두철미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것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의견이 대립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서로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당사자들이 역지사지의 자세로 문제를 풀기를 바랍니다.”
-대화의 중요성을 언급하셨는데 유가족들은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주선할 용의는 없습니까?
“그건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닌 것 같고요, 여든 야든 유가족이든 서로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정치적 손익 관점에서 문제를 풀려고 하면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대통령과 정부,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국민 불신이 매우 커진 것 같습니다. 이것도 국민통합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특별법을 제대로 만들어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지요. 모두가 애국심을 갖고 임해야 합니다. 과정에 진통이 있지만 우리 국민들은 결국 손을 맞잡고 좋은 나라를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의 해결 과제라 할 수 있는 이념 계층 지역 세대 간 갈등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실시한 국민인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계층 갈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왔으며, 이념 지역 세대 갈등 순이었습니다. 노사 갈등도 높게 나왔습니다.”
-대통합위원회도 계층 갈등을 가장 심각하게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계층이 고착화되는 것을 대단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소득격차가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교육격차, 주거격차, 문화격차로 이어지기 때문에 갈등 공화국이란 오명이 생겼다고 봅니다. 계층이 고착화되면 사회발전이 없습니다.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처럼 모든 것이 돈으로 연결되면 경제적 약자의 신분 상승은 불가능하지요. 돈-일류학교-좋은 직장으로 일률적으로 연결되는 프레임은 안 됩니다. 옛날처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고, 기회의 사다리가 많은 사회가 돼야 합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국민통합이 이 시대의 최대 명제라 할 수 있습니다.”
-공직사회 개혁을 이유로 정부가 장기적으로 행정고시를 폐지한다는데 개천에서 용 날 기회를 봉쇄하는 것 아닙니까?
“논의를 충분히 해야겠지요. 공정한 입시와 정실이 개입되지 않는 공무원 시험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도적 보완을 해서 기회의 사다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살맛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필기시험 하나로 인재를 뽑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고르지 않습니까. 아무튼 계층 갈등 해소는 국민통합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념 갈등은 무엇이 문제이고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경우 이념의 개념이 좀 헷갈리고 혼동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느 사회나 수레가 두 바퀴로 움직이듯 보수나 진보는 다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종북이 진보인 것처럼 변질돼 있습니다. 6·25전쟁이 만든 불행한 프레임이지요. 통일을 앞두고 이것은 반드시 정리돼야 합니다. 지금은 민생을 중시하는 시대이고, 공산주의는 이미 안 된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다 알기 때문에 사실은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그걸 빙자해서 편 가르기를 하고 진영논리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지역 갈등도 여전히 큰 문제 아닙니까. 이제 영호남뿐 아니라 충청까지 가세한 형국입니다.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는 않습니다. 지역과 정당이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슈가 생길 때 지역 문제를 덧칠하는 것은 큰일입니다. 그런데 최근 여야 일부 국회의원들이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와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교환 방문한 것은 지역감정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경남과 전남이 공동으로 공업경제특구를 만들고, 전남 나주와 경북 영주가 배와 사과를 공동 판매한다는데 이처럼 동서 간에 협업을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영남 편중 인사가 심각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3부요인과 권력기관장이 모두 영남 출신입니다.
“저도 호남 사람이어서 그런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 임기는 이제 1년 반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3년 반이 남은 셈이지요. 아직 그런 평가를 하기는 무리라고 봅니다. 저도 대통령 비서실장 할 때 정부 인사에 관여했는데 자질과 능력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남 편중을 지금 단정하는 것은 너무 빠릅니다. 이 정부가 끝난 뒤 평가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집권층 인사들이 공기업 사장과 감사 등을 독차지하는 것도 문제 아닙니까?
“과거부터 관행처럼 해온 것인데 사실 문제는 있지요. 낙하산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자격이 없는 사람을 그런 자리에 앉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겁니다.”
-지역 갈등이나 여야 간 극한 대립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권력 분산형 개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개헌을 언제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용은 국민이 결정해야 하고, 시기는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1987년 개헌’은 장기 독재를 막는 데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5년 단임과 직선제로 결정났는데 어디까지나 그것은 과도체제라고 봐야지요. 이제는 그런 체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4년 중임제와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겠지요. 현행 5년 단임제는 사실 대통령 무책임제일 수도 있습니다. 또 5년이란 짧은 기간에 중요 정책을 완성하기는 불가능합니다. 4년 중임제는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시기는 신중하게, 국민의 뜻에 따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시기에 개헌을 추진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3포 세대’라 불리는 20, 30대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엄청나게 큽니다. 근본적인 지원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기성세대, 특히 사회지도층이 반성하고 각성해야지요, 모든 면에서 모범이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등록금 지원, 취업 알선, 보육 지원을 대대적으로 해줘야 하는데 예산은 한정돼 있습니다. 이들의 복지 향상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국민대통합운동의 효과가 언젠가 나타나긴 할지 의문이 듭니다. 언제쯤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날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구들장 효과에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국민안전, 국민행복, 국민통합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걸 위해 작은 실천-큰 보람운동을 통해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모두가 더불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광옥 위원장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동교동계 핵심 정치인. 민한당 소속 초선 의원이던 1982년 10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으며, 아무도 ‘김대중’을 입 밖에 내지 못하던 엄혹한 시기였다.
친화력이 좋고 협상력이 뛰어나다. 그러면서도 중량감이 느껴지는 정치인으로 통한다. 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DJP 후보단일화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때 초대 노사정위원장을 맡아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 친노계와 결별했다가 2012년 대선 때는 국민통합과 영호남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전북 전주(72) △중동고·서울대 영문과 △민추협 대변인 △11, 13, 14, 15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사무총장·부총재 △노사정위원장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대통령 비서실장 △민주당 상임고문 △새누리당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인人터뷰]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국민통합의 온기 구들장처럼 확산시킬 것”
입력 2014-09-03 0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