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 규제가 K팝 성장 발목 잡는다

입력 2014-09-02 03:19
가수 싸이가 지난해 발표한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KBS에서 볼 수 없다. KBS는 싸이가 주차금지를 표시한 고무 고깔을 발로 차는 장면을 두고 공공시설물 훼손에 해당된다며 방송부적격 판정을 내렸다.유튜브 화면 캡처
여성그룹 f(x)는 지난 7월 노래 ‘레드 라이트’에 대한 재심의를 받았다. 특정 회사를 연상시키는 단어가 문제가 됐다.SM엔터테인먼트 제공
# ‘국제가수’ 싸이가 주차된 차 옆에 놓여진 ‘주차금지’라고 써 있는 고무 고깔(러버콘)을 발로 찬다. 고깔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지난해 싸이가 발표한 ‘젠틀맨’ 뮤직비디오 첫 장면이다. 이 장면 탓에 뮤직비디오는 KBS에서 공공시설물 훼손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반면 MBC와 SBS에선 편집되지 않은 상태로 각각 12세,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 지난 7월 여성 5인조 그룹 f(x)는 노래 ‘레드 라이트’의 재심의를 받았다. 가사 중 ‘캐터필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중장비 제조회사 이름이라는 이유로 KBS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결국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캐터필러를 무한궤도로 수정했다.

지난 28일 국민경제자문회의와 산업연구원이 서울 중구 명동11길 은행회관에서 진행한 ‘문화산업 글로벌 경쟁력 제고방안’ 공동 세미나에서 가요 관계자들은 중복 규제가 K팝 성장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발제자로 나선 한국음반산업협회 송철민 실장은 “음악심의의 경우 ‘방송법’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청소년보호법’ 등 상이한 법에 의해 과다하게 규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이 문제=가요 기획사들의 가장 큰 불만은 가요계를 규제하는 관할 기구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미래창조과학부부터 산하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까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관할 기구가 많다 보니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판단은 제각각이다.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방송사 심의를 통과하고도 여성가족부의 사후 심의에서 선정적이라는 판정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뮤직비디오의 경우 방송법에 따라 방송사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인터넷에 올라가는 뮤직비디오는 영비법의 사전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때 방송사 심의를 통과한 뮤직비디오는 시청등급, 방송심의일자, 방송사명만 표기하면 영등위에서 별도의 등급 분류를 받지 않아도 된다. 여가부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사후 심의를 하고 있다. 노래 가사도 마찬가지다.

이러다 보니 과거 방송에서 나왔던 노래들이 뒤늦게 유해 매체물로 선정되는 웃지 못 할 일도 생겼다. SBS는 최근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 1집에 수록된 노래를 리메이크해 발표한 리아의 ‘할 말도 없지만’을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판정했다. 2011년엔 쎄시봉 친구들의 노래 ‘한잔의 추억’ 등을 여가부가 청소년 유해매체로 판정했다.

기획사 관계자는 “작사가들이 가사를 쓸 때 자기 검열을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일부 기획사는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고 19금 판정을 받기 위해 선정적으로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문체부에서 발표한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야간 활동 금지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시행령에 따르면 15세 미만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경우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활동할 수 없다. 이미 소속사들은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밤 10시 이후 노동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청소년보호법을 따르고 있다.

또 다른 기획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활동할 땐 국내법을 적용할 것이냐”며 “10대 스포츠 선수들이 밤늦게까지 훈련하는 건 애국이라 칭찬하면서 연예인들만 문제 삼은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해결 방법은 없나=가요 관계자들은 심의 등을 규제할 기관을 단일화하고 규제 기준도 통일해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준이 하나로 정해져야 창작자들의 창작도 수월하다는 애기다.

기획사 관계자는 “규제가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다”라며 “제대로 된 정책을 마련할 경우 선정성 논란을 잠재우고 콘텐츠의 질은 높일 수 있는 순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가요 관계자들이 원하는 것은 사전심의다.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의 경우 제작자와 학부모들이 사전심의를 하고 있다. 선정적일 경우 온라인 음원과 동영상은 물론 오프라인 음반까지 동일한 마크를 부착해야 한다. 강제 조항은 아니다. 선택은 이용자의 몫이다. 일본 레코드협회(RIAJ)도 학부모와 기관들로 구성한 윤리위원회가 사전심의를 하고 있다.

송 실장은 “심의하는 사람의 자의적 해석이 들어갈 수 있는 만큼 다양한 계층과 분야의 사람들로 위원회를 구성하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