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빼든 공정위] 스크린 독과점·팝콘 폭리… 영화산업 불공정 관행 손본다

입력 2014-09-01 02:55
직장인 김모(43)씨는 지난달 22일 영화 ‘마더 데레사의 편지’를 보기 위해 새벽에 부리나케 일어나야 했다. 한낮이나 저녁에 상영하는 곳이 없어 오전 7시 한 차례 틀어주는 경기도 성남 분당구 CGV 영화관을 찾아가야 했다. 김씨의 부인은 아이들 등교시키느라 영화 볼 기회를 잡기가 힘들다고 했다. 김씨는 “교황 방한 의미를 되새기려고 이 영화를 관람했는데 조조 때 한 차례만 상영하니 기가 찼다”면서 “영화 끝날 때 보니 관람객이 3명뿐이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맞춰 지난달 21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당초 계획보다 3개월 앞당겨 개봉했다. 평범한 수녀에서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삶을 잔잔하게 그린 대작이다. 그러나 개봉 열흘째인 31일 상영관은 서울과 춘천에 각각 1개씩으로 상영횟수도 하루 1차례뿐이다.

이에 비해 영화 ‘명량’은 지난 7월 31일 개봉한 지 한 달도 안돼 관람객 1600만명을 돌파하며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8월 한 달 이 영화를 튼 스크린은 1586개다. 국내 영화관 전체 스크린 수가 2184개인 점을 감안하면 4개 중 3개는 명량을 튼 셈이다. 어찌 보면 두 영화의 흥행 성공과 실패는 개봉 첫날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마더 데레사의 편지 소외 현상에 대해 CJ 관계자는 “다양성 영화의 흥행성이 낮은데 작품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상영관을 늘릴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이 현상은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와 맞닿아 있다. 명량의 투자는 CJ엔터테인먼트, 배급사는 CJ E&M, 주 상영관은 CJ CGV다. 영화의 제작과 배급, 상영을 모두 틀어 쥔 대기업이 소비자의 선택권보다는 내부 거래를 통한 수익 극대화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수직계열화를 포함한 영화산업 불공정 관행에 대한 조사를 9월 중 마무리할 계획이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지난 28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대기업의 영화산업 수직계열화 문제에 대한 현장조사를 마무리했다”며 “법 위반이 확인될 경우 엄중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CJ와 롯데 등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이 배급하는 영화를 스크린에 집중 배분한 스크린 독과점행위가 불공정행위에 해당되는지 검토하고 있다.

스크린독과점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내에는 2000여개의 영화제작사가 있다. 그러나 중간 도매상에 해당하는 배급사는 4∼5개 메이저 회사들이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게다가 시장의 50% 정도를 과점하고 있는 배급사인 CJ 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는 CGV와 롯데시네마라는 상영관까지 갖고 있다.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배급하기보다는 두 대기업이 스스로 투자·배급한 영화를 정당한 이유 없이 과다 상영한 것으로 공정위는 의심하고 있다.

수직계열화에 따른 영화산업 왜곡 현상은 또 있다. 노 위원장은 “상영관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영화표를 헐값으로 막 준다”며 “그러면 제작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료로 보러 온 사람들이 팝콘을 사먹어 상영관에만 수익이 돌아간다”고 꼬집었다. 실제 영화진흥위원회는 무료 입장의 경우 배급자 사전 동의 없이 허가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지만 CVG는 입장 수입의 5%,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7% 내에서 무료 입장을 허용한다. 노 위원장이 직격탄을 날린 ‘팝콘 팔아 돈 버는 구조’는 영화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3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파는 팝콘 원가를 분석한 결과 5000원짜리 팝콘의 원가는 613원에 불과했다. CJ CGV의 전체 매출액 중 팝콘 판매 등 매점 매출 비중은 2010년 15.7%에서 지난해 17.7%로 급증하고 있다. 원가 대비 수익률도 높다.

공정위가 조만간 영화산업 불공정행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과징금을 부과하겠지만 근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스크린 독과점 현상이 불공정행위라고 결론을 내린다 해도 영화 수익이 대기업에 집중되는 현상, 제작자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은 또 다른 문제다. 한 영화가 100억원의 수익을 올릴 경우 제작사에 돌아가는 몫은 평균 16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극장은 40억원 이상을 가져간다. 제작사는 16억원에서 자체 수익을 빼고 나머지를 감독·배우·스태프에게 나눠준다. 톱스타가 출연하면 스태프 등 보조인력에게 돌아가는 몫은 더욱 줄어든다. 이렇다보니 음지에서 일하는 영화종사자들은 4대 보험 가입은커녕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노 위원장도 “공정거래법 적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관련 부처와 협조해 불공정한 관행을 막기 위한 표준계약서 배급, 영화 종사자 처우 개선 문제 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