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북아 안보질서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활발한 움직임에도 남북관계는 여전히 해빙 무드로 쉽게 전환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종료되면서 9월 한반도 정세에도 일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있지만 남북관계 발전의 대전제인 북한 비핵화 이행에 진전이 없을 경우 이런 움직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남북 양측이 서로 일정 수준의 유연성만 발휘한다면 의외로 관계 진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배제할 순 없다.
◇靑 국가안보실이 대북관계 주도하면서 유연성 실종=올 들어 남북관계는 좀처럼 돌파구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여러 대북 구상과 사업은 북측의 비판만 불러왔다. 거시적인 통일 구상부터 인도적 차원의 협력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이 적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국제사회로 끌고 나오려는 협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얼마 전 공개한 국가안보 전략은 특히 북한과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군비통제 논의까지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확고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 통일 준비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목표 달성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북한이 먼저 태도 변화를 보여야 한다는 전제를 명확하게 적시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가안보 전략은 북측과 대북 상업적 투자, 소규모 교역 허용 등도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는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대북 투자가 이뤄지려면 5·24조치 해제가 선행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북한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등 우리 측 요구를 북측이 수용해야 한다. 기본적인 신뢰 구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제안이 쏟아지고 이에 대한 반박과 비판이 이어지다 보니 남북 간에는 신뢰의 선순환 대신 대결의 악순환 구도만 생겨난 셈이다.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현 남북관계의 경직성이다. 남북대화를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주도하고 주무 부처인 통일부가 소외되면서 일정 수준의 유연한 대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지나친 원칙에 얽매여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결국 국가안보실이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북한에 대해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유연성을 상실했다는 평가다. 한 대북 전문가는 31일 “청와대가 남북관계를 주도하다 한계에 부닥치면 그 부담은 대통령에게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부처에 어느 정도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9월 남북관계 분기점 전환되나=물론 향후 남북관계가 언제까지 답보상태에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선 출범 3년차를 앞둔 박근혜정부로선 남북관계에서도 어느 정도는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미 관계, 한·중 관계와 달리 남북관계는 기본적인 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갈수록 우리 측에도 부담이다. 이 같은 꽉 막힌 상황을 풀려면 일단 남북 당국 간 대화는 계속돼야 하고 또 의제 역시 상당히 포괄적인 성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우리 측이 북측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할 때 양측 관심사라고 한 것은 그만큼 안건에 너무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조만간 북한에 2차 고위급 접촉 호응을 다시 촉구하는 등 남북대화 여건 마련에 주력해나간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북측 역시 UFG 연습 종료 이후 우리 측과의 대화에 나설 여지는 충분하다. 북한이 여전히 우리 측을 비난하고 있지만 이는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본격적인 대화 국면에 앞서 우리 정부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 수단일 가능성이 높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이슈분석] 남북관계 사라진 유연성… 신뢰 선순환 대신 ‘대결 악순환’
입력 2014-09-01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