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부동산 직원인 김모(31·여)씨는 2008년 7월 부동산 사장 정모(48·여)씨로부터 인천 서구의 1억2000만원 상당의 빌라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도록 명의를 빌려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신용불량 상태였던 정씨는 “상황이 좋아지면 명의를 이전하겠다”고 약속했고, 김씨는 이를 승낙했다. 계약금 2000만원은 정씨가 냈고, 김씨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잔금 약 1억원을 정씨 대신 냈다. 정씨는 대출금 이자비용과 집 수리비 등 부대비용을 부담하고, 대출금도 향후 갚기로 했다. 실소유주가 과세 등을 회피하기 위해 쓰는 전형적인 명의신탁 계약이었다.
정씨는 부동산 가격이 유지되던 2012년까지는 실제 모든 부대비용을 지불하고 집을 관리하는 등 실소유주 권리를 행사했다. 그러나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자 정씨의 태도가 돌변했다. 본인이 빌라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부동산에 대한 책임을 김씨에게 떠넘겼다. 김씨는 졸지에 헐값이 된 부동산을 대출까지 받아가며 산 소유주가 돼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빌라 세입자는 정씨가 받아간 전세보증금 1500만원을 김씨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정씨를 상대로 “부동산을 도로 찾아가고, 대출금을 갚으라”며 지난해 소송을 제기했다. 통상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명의수탁자가 부동산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서로 부동산 주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사건을 대리한 허윤 변호사는 “최근 부동산 업계 경기가 나빠지면서 비슷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민사1부(부장판사 조건주)는 지난달 “정씨는 김씨에게 대출금 1억여원과 이자비용 730만원 상당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단독] 명의 빌려 산 후 집값 하락하자 나몰라라… 法 “실소유주가 대출금 갚아라”
입력 2014-09-01 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