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국 동네병원을 외국인 영리병원 삼겠다니

입력 2014-09-01 03:30
정부가 한국 진출을 포기한 중국 병원을 외국인 투자 영리병원으로 승인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중국 산얼병원에 대한 제주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승인을 9월 중에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산얼병원 측은 그 전에 이미 병원 용지 매각에 나서는 등 사업 중단 절차를 밟고 있었다. 산얼병원은 당초 제주 서귀포시에 약 500억원을 들여 48병상의 영리병원을 짓겠다고 제주시에 허가를 신청했었다.

이번 일은 해당 병원에 관한 기초적인 실태도 파악하지 않은 무책임 행정의 극치다. 정부가 외국인 영리병원의 국내 유치가 허용된 뒤 10여년 동안 단 하나도 실적을 올리지 못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처리할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문제의 산얼병원이 어떤 병원인지 조금이라도 알아봤다면 이처럼 한심한 상황은 벌어질 수 없었다.

산얼병원은 베이징시내 한국인 타운으로 불리는 왕징(望京)의 한 아파트 단지에 자리잡고 있다. 동네병원에 불과해 중국 보건 당국으로부터 의료보험 적용 대상 병원으로 지정되지도 못했다. 이 병원을 이용해 본 교민들은 “우리 의료기관보다 시설이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데 한국에 진출한다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더욱이 이 병원 모기업 회장은 사기 대출을 받은 뒤 구속됐다. 이처럼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세우기는커녕 지금은 산얼병원 자체를 운영할 자금 여력도 없는 형편이다.

최종 승인권을 가진 보건복지부는 결과적으로 자격도 없는 병원을 국내로 불러들이려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물론 산얼병원 유치에 적극적 자세를 보인 기획재정부와 제주도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국내 1호 투자 개방형 병원을 설립한다면서 상대 병원의 실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대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추진 불가능한 사업을 투자 활성화 대책으로 대통령 면전에서 버젓이 발표하는 사례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철저한 문책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