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축소로 잃는 게 더 많을 것

입력 2014-09-01 03:40
정부가 지난 29일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대상이 되는 사회간접자본 사업 규모를 현행 5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결정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정부는 “예타가 도입된 1990년에 비해 경제 규모가 2.3배 커졌는데도 대상 기준은 그대로 유지돼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변경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제도의 취지에 어긋날 소지가 많은 데다 지금도 변칙적인 방법을 통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많은 실정임을 감안할 때 분명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재정법에 근거한 예타의 본질적인 목적은 예산낭비 방지와 재정의 효율적 집행이다. 많은 국책사업 가운데 투자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가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이번 조처로 앞으로 사회간접자본 사업의 28%는 예타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비용 대비 편익 분석이 빠진 재정 사업이 그만큼 많아지게 되면서 예산낭비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99년부터 2013년까지 665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한 결과 이중 37%가 사업성이 낮은 것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이 조사의 필요성을 여실히 입증한다. 22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이 애물단지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예타를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란 지적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욱이 현재도 사업 규모를 쪼개 예타 대상에서 빠져나가거나 타당성이 없다고 판정받았음에도 일단 공사를 시작하고 보는 등 밀어붙이기식 사업 추진이 많은 상황에서 그나마 이 제도가 완화되면 그에 따른 비효율은 심화될 것이 뻔하다. 예타 종합평가 과정에서 지역균형 발전에 대한 기여도 비중을 높인 것도 논란거리다. 이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역균형 발전 논리를 내세운 여권 실세 의원들의 입김에 따라 활용도가 적은 교량, 다리 건설 등 선심성 사업이 대거 추진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의 이번 조처는 재정에 대한 관리 감독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해야 되는 현 상황과도 앞뒤가 맞지 않다. 세금은 목표보다 적게 걷히는 반면 돈 쓸 곳은 훨씬 많아진 재정 실태를 감안할 때 한푼이라도 허투루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일부 부처들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타당성이 없는 사업을 추진한 사례가 많았다”고 예산 낭비를 질타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부채 감축을 위해 새로운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대한 예타를 내실화하겠다고 이미 공언한 바 있다. 이런 여건들을 고려할 때 예타 대상 사업 축소는 백지화하는 것이 마땅하다. 오히려 사업 쪼개기, 사업비 축소, 예외 조항 등을 통해 예타 대상에서 벗어나는 탈법적 행위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