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김명원(55)씨가 십자가와 사랑에 빠진 건 2006년이었다. 인천 강화군 불은면 영은교회에 출석하는 김 권사는 어느 날 사목실에 들렀다 독특한 장면을 목격했다. 이 교회 정찬성 목사가 나무 십자가를 만들고 있었던 것. ‘나는 왜 십자가 만들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목수가 아니던가.’ 작업장에 돌아온 김씨는 곧바로 십자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로 9년째, 김씨는 십자가 제작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간 만든 십자가는 3㎝짜리 미니 십자가에서 4m가 넘는 대형 십자가까지 수만점에 달한다.
지난달 27일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빌립공방’에서 그를 만났다. 성경에 나오는 빌립 집사의 신실한 삶을 동경해 붙인 이름이다. 김씨는 최근 3년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에서 빌립공방을 운영하다 지난달 15일 이곳으로 작업장을 옮겼다. 공방 옆엔 김씨의 살림집이 있다. 작업장에 들어서자 은은한 나무 향기가 느껴졌다. 바닥엔 톱밥이 쌓였고, 198㎡(약 60평) 크기의 공방 곳곳엔 나무 십자가 수십점이 전시돼 있었다. 다릅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향나무 장미목…. 십자가를 만드는 데 쓰인 나무 종류는 제각각이었다. 크기도 일정하지 않았고 모양 역시 특이했다.
“김포에서 일할 땐 환경이 열악했어요. 논바닥에 지은 비닐하우스였거든요. 습기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죠. 그런데 최근 하관철 문산감리교회 목사님이 이곳에서 작업하라고 공간을 내주셨어요. 알고 보니 문산감리교회의 옛 예배당이더라고요. 영적인 작업장이 생긴 셈이죠.”
김씨는 매일 하나님을 영접하는 삶을 산다. 그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성경을 필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1시간 동안 말씀을 베껴 쓴 뒤 5시까지는 성경을 읽는다. 5시부터 6시30분까지는 기도하고 기도가 끝나면 30분간 찬송을 부른다. 아침밥을 먹고 8시30분까지 작업장으로 출근해 오후 6∼7시까지 나무와 씨름하며 십자가를 만든다.
“하루에 십자가를 20∼30개 만듭니다. 대신 주일에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이니까요. 십자가 만드는 일은 정말 재밌습니다. 십자가를 만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찬양을 하게 되고 어떨 때는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지요. 영적으로 취하는 기분을 느낍니다(웃음).”
전남 신안 출신인 김씨는 열네 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 금호동의 한 가구공장이 첫 직장이었다. 왕십리 옥수동 상봉동…. 젊은 시절 그는 서울시내 가구공장 곳곳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자신의 사업체까지 차렸다. 하지만 90년대 말 IMF사태로 그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김씨는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지인의 소개로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며 “그때부터 술 담배 끊고 신앙생활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십자가 만들기에 뛰어든 2006년까지는 강화의 한 가구공장에서 일했다. 전통가구를 만드는 곳이었다. 문제는 공장에서 절에 납품하는 불교용품도 제작한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불교신자였던 사장이 공장에 불상들을 전시해 놓은 거예요. 교인인 제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작업하면서 계속 찬송가를 불렀죠. 그러다 사장과 충돌했고, 때마침 십자가 만드는 일에 빠지면서 공장 다니는 걸 그만뒀어요.”
김씨는 40년 넘게 나무를 다룬 베테랑 목수다. 일반 공장에서 일하면 한 달에 300만원은 거뜬히 번다. 하지만 십자가 제작은 ‘돈이 안 되는’ 일이다. 현재 그의 한 달 수입은 100만원 남짓이다.
현재 김씨는 인터넷을 통해 십자가를 팔아 생활비를 번다. 아내와 자식들은 경기도 오산에 사는데, 벌이가 변변찮아 가족에게 돈을 보내줄 순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자식들 생계는 오산의 한 병원 식당에서 일하는 아내가 책임진다.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어요. 십자가 제작은 저의 사명이거든요. 십자가는 신앙의 모든 걸 품은 성물(聖物)입니다. 우리나라 모든 가구에 제 십자가를 보급하는 게 꿈입니다."
김씨는 내달 20일부터 약 2주간 경기도 안양대에서 십자가 전시회를 연다.
김씨의 십자가 작품은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웹 사이트 '빌립 나무 성물 제작소'(phillp.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화=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③ 강화 화도면 ‘빌립공방’ 김명원 권사
입력 2014-09-01 0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