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기] 담배의 효능

입력 2014-09-01 03:12
담배가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1614년 나온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최근 일본에서 들어와 널리 펴졌다’고 적혀 있는 점으로 미뤄 1610년쯤 전해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담배는 금세 온 백성이 즐기는 작물이 됐다. 우리 역사에서 담배만큼 인기가 많은 기호품은 없었다. 조선 사람들은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조선 사람들의 담배 사랑은 하멜표류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1653년 제주도에 표착했다 14년간 조선에 억류됐던 하멜은 ‘아이들도 4, 5세가 되면 담배를 피우며 남녀노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적었다. 어른이 아이에게 담뱃대를 물린 것은 배 아픈 데 특효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선조들은 뱃속 회충이 담배 연기에 질식해 밖으로 나온다고 믿었다.

1810년 이옥이 펴낸 담배 전문서적 ‘연경(煙經)’에는 재배법이나 피우는 예법 등과 함께 담배의 효능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아침에 일어나 목에 가래가 끓고 침에 텁텁한 것을 가시게 한다. 시름 많고 걱정 심하거나 하릴없이 심심할 때 피우면 상쾌해진다. 추울 때 몸이 얼고 입술이 뻣뻣해질 때 연거푸 피우면 몸이 따뜻해진다. 비가 많이 내려 축축하고 곰팡이 피는 것 같을 때 피우면 상쾌해진다. 한 대 태우면 좋은 시구가 딱 떠오른다.’

이처럼 담배가 각광을 받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조선 사람들에게 싼값으로 정신적인 만족감을 주었다는 점이 크다. 조선 사람들은 숱한 자연재해와 질병, 절대적인 식량 부족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된 일 등으로 고통 받았다. 담배는 이런 이들에게 짧은 순간이지만 더할 나위 없는 휴식과 여유를 제공했다. 수명이 짧으니 흡연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걱정할 필요가 적기도 했다.

선조들의 시름과 고통을 덜어주던 담배는 현대에 와서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4000종이 넘는 유해물질과 독성화학물질로 범벅돼 있어 각종 암이나 심장병, 순환계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최근 담배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료제로 등장한 지맵을 양산하는 데 담뱃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쥐로부터 얻은 항체를 담뱃잎에 주입하고 이를 다시 7∼8주간 성장시켜 항에볼라 바이러스 혈청을 대거 얻는다는 것이다. 만병통치약과 같은 묘약에서 건강을 위협하는 적으로 내몰렸던 담배가 다시 인류의 적을 퇴치하는 일등공신이 될지 기대된다.

김상기 차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