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자살자가 많은 도시다. 1996년 400명 선이던 게 아시아 외환위기와 불황의 여파로 1998년 800명을 넘어섰다. 높은 자살률이 지속되자 요코하마시(市)는 2007년 정부의 ‘제1차 자살예방대책’에 따라 실태 파악에 나섰다. 설문조사 등을 통해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했고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자살은 불안과 걱정에서 비롯된다. 매년 실시했던 시민의식조사 자료를 되짚어 보니 1998년을 기점으로 건강 사고 경제력 등 ‘생활 속 불안’을 호소하는 응답이 급증하고 있었다.
②자살자는 대부분 사전에 신호를 보낸다. 2010년 시민 6000명을 조사한 결과 16%가 ‘진심으로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답했고, 이 중 상당수는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그 생각을 표현했다.
③자살은 막을 수 있다. 자살자 중 86%는 거주지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주변에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였다면 자살 위험을 사전에 파악할 수도 있었다.
시 당국은 이 세 가지 사실을 종합해 ‘자살은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야시 후미코 요코하마 시장은 직접 거리로 나가 자살예방 캠페인을 지휘하며 시민들에게 외쳤다. “누구든 만나 얘기하고 터놓으면 소중한 목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변에 작은 관심을 기울이면 한결 나아집니다.” “생명을 지키려면 서로 의지해야 합니다.”
요코하마 정신건강상담센터 시라카와 노리히토 소장은 “누군가 자살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건 주변 사람”이라며 “모든 시민이 이를 숙지해야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코하마시는 꾸준히 자살예방사업을 벌여 연간 자살자를 지난해 600명대로 줄였다. ‘자살 없는 요코하마’를 목표로 지금도 캠페인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연간 1만4000명이 자살한다. 2003년 이후 자살률 세계 1위란 서글픈 타이틀을 놓친 적이 없다. 한림대 김동현 교수팀의 분석 결과 12세 이상 인구 중 637만명이 자살을 고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9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제정한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서울에서도 1일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과 범종교 협약식’이 열린다.
국민일보는 지난 3∼4월 ‘자살이란 이름의 질병’ 시리즈를 연재했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질병이며 그 치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부모가 이혼해 마음을 닫고 지내다 응어리가 폭발했던 열다섯 살 은정이(이하 가명), 외환위기에 실직하고 사업에 실패한 뒤 패자부활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53세 이운하씨, 황혼에 아내를 잃고 공허함을 감당키 어려웠던 76세 김한영씨….
당시 사회부 후배들은 자살을 시도했던 이들을 어렵게 찾아내 그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적었다. 언제 자살을 고민하게 되는지, 그럴 때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그 신호를 감지하려면 주변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가며 차분히 설명해줬다.
요코하마 이야기도 시리즈에 수록된 내용이다. 자살을 예방하는 최선의 백신은 주변의 ‘작은 관심’이란 걸 기사를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사회부 데스크인 나는 그 시리즈의 ‘첫 독자’였다. 10회 분량의 원고를 일일이 읽고 다듬었지만 과연 그 메시지를 진지하게 새겼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주말 다시 기사를 꺼내 읽었다. 이런 기사를 써준 후배들에게 고맙고, 또 부끄럽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
[뉴스룸에서-태원준] 주변의 작은 관심
입력 2014-09-01 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