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를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밟아 나가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행보는 정치안보, 경제 등을 망라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5월에 개최된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시아에 새로운 안보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아시아 신(新)안보관’을 제시했다. 지역 안보질서의 ‘현상’에 대한 변경의지를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이다. 중국은 또한 야심찬 지역경제발전 구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으로 명명된 신실크로드 경제벨트 건설 구상이 그것이다.
일대일로 전략은 중국의 동, 중, 서부와 주변부 지역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경제회랑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대(一帶)’는 중앙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帶)를, 그리고 ‘일로(一路)’는 동남아와 서남아를 거쳐 중동, 아프리카, 최종적으로 유럽까지 이어지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路)를 의미한다. 신실크로드 구상은 과거 교역로였던 실크로드와는 달리 시장과 생산네트워크의 연결과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교통과 통신, 그리고 산업기반시설 구축만이 아니라 경제회랑 형성을 위한 제도와 기구의 정비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구상이다. 추진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세계경제 지형도를 바꿔놓을 수 있는 거대 프로젝트다.
21세기 신실크로드 경제벨트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태지역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 2020년까지 매년 약 8000억 달러가 요구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을 중국이 추진하는 신실크로드 계획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다자개발은행(MDB·Multilateral Development Bank)인 ADB의 투자 1순위는 사회개발 분야다. 이와 같은 자금 수요를 충족시켜 줄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은 대안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함으로써 일대일로 전략을 위한 개발투자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한국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 AIIB에 참여하는 데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중국이 AIIB 설립을 추진하면서 취하고 있는 지배구조 방식이다. 중국은 자국의 자본분담금을 50%로 설정하고 있다. 이 정도면 국제 다자개발은행이라기보다는 중국의 개발은행인 중국개발은행(CDB)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AIIB 설립을 현재의 국제 금융질서에 대한 도전의 시작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서도 국제정치경제적 시각에서 검토해 봐야 한다. 막대한 투자자금의 집행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의 증가로 귀결된다. BRICS 회원국들이 신개발은행(NDB) 신설 논의 과정에서 중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출자 지분비율과 의사결정 구조를 참여국에 균등히 배분키로 결정한 이유를 신중하게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 AIIB 참가를 결정하기 전에 무엇보다 중국에 대해 AIIB가 명실공히 국제 다자개발은행으로서의 제도와 형식을 갖추도록 요구해야 한다. AIIB 출자 지분비율과 의사결정구조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참가에 따른 실익을 보장받을 수 없다. 현재 중국이 추진하는 AIIB의 구조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대폭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아시아 국가들 또한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ADB가 인프라스트럭처 투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 주도의 AIIB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상황은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ADB 제도, 투자방식과 의사결정에 개선을 요구할 필요도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치경제 상황 변화는 언제나 한국에 어려운 도전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 맞서 한국은 국제정치경제 역학관계의 맥락에서 양자관계를 고려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지용 국립외교원 교수
[글로벌 포커스-이지용] 中 경제벨트 구상과 AIIB
입력 2014-09-01 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