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9월 2일] 영원한 생명과 자유

입력 2014-09-02 03:48

찬송 :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434장(통 49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로마서 5장 5∼11절


말씀 :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사데 교회는 초대교회 당시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일곱교회 중의 한 교회였습니다.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하는 그 교회가 겉모양은 살아있었으나 내면으로는 죽은 교회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내시기 위해 어떤 사랑을 퍼부으셨습니까? 사람이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됩니다. 그래서 요즘 세대가 딸바보, 아들바보 등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산이 되지 않는 바보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가치나 자격이 있었을까요?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6절에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연약’의 성경 원문 아스데논은 육체적으로 병이 들어 약함, 도덕적으로 비참함 그리고 신앙이 매우 깊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아무런 가치도 가능성도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라고 하셨습니다. 인간들이 계속 죄나 짓고 있었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죄인입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했습니다. 10절에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죽음으로 끝났다는 것인가요?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연약한 자리에 오셔서 나와 함께 나의 연약함에 대해 죽으시고, 이제는 강한 자로 살도록 나와 더불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죄인 된 자리에 오셔서 나와 함께 나의 죄인 됨에 대해 죽으시고, 내가 이제는 의인으로 살도록 나와 함께 주님께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우리는 더 이상 약하지 않고, 우리는 죄인도 아니고, 우리는 원수도 아닙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구원에 여러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치료, 자유, 그리고 관계회복입니다. 말라기 4장 2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이 말씀에 이어서 말라기 선지자는 그 ‘치료’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곧 아비의 마음이 자식에게로 돌아오고, 자식의 마음이 아비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치료요, 온전한 자유입니다. 모든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그 백성에게 향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부부의 마음이 서로에게로 돌아옵니다. 형제와 이웃의 마음이 서로에게로 향합니다. 생명 치료를 받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기도 : 우리를 사랑하신 생명의 하나님, 우리들로 그 사랑으로 인한 온전한 치료를 받게 하소서. 열등감이나 우월감에서 벗어나 자유하며 하나님과 사람들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남능현 목사(반월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