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안전만큼은 겁을 먹자

입력 2014-09-01 03:20

믿건 말건 나는 겁이 많다.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 남동생이 집안에서 추락사고로 죽었다. 초교 시절엔 중학생 언니를 그만 연탄가스 사고로 잃었다. 전쟁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6·25 날이면 울리던 하늘을 찢을 듯한 비상 사이렌 소리에 소스라치곤 했었다.

‘안전’이 최우선인 도시건축 분야에서 일하게 된 것도 이런 성향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대학 1학년 때 ‘대연각 화재’ 참극이 났는데, 같은 과 학우가 고층 객실에서 뛰어내리는 끔찍한 장면을 TV에서 목격했다. 인간이 만드는 구조물이 붕괴되는 인재 앞에 설 때마다 그 충격이 떠오른다.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을 때, 4대강 공사 중 낙동강 왜관철교가 무너졌을 때 내 가슴도 함께 무너져내렸었다.

겁 많은 나는 호텔 방에 묵으면 비상구 위치부터 확인한다. 창문을 열 수 있는지 깰 수 있는지 체크한다. 영화관에 들어서면 출구 동선부터 익혀놓는 것은 물론이다. 기껏 4층밖에 안 되는 우리 집 옥상에는 비상 밧줄이 있고 밧줄 묶을 고리까지 설치해 놨다. 비상시에 그걸 쓸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든든하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도시 곳곳에 싱크홀이 출몰하고 남의 나라 원전 사고가 내 나라 먹거리 피해가 되는 등 사람들이 부쩍 불안심리에 시달리고 겁이 많아졌다고 한다. 나는 섣불리 안심시켜드리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안전에 대해서 만큼은 좀 더 겁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주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질 테니까 말이다.

안전을 지키려면 눈에 안 보이는 데에 훨씬 더 돈이 많이 들어간다. 땅 밑 기초를 튼튼하게 하고, 물 속 안전을 지킨다는 것이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 걸리고 돈 들고 꾸준히 기본을 지켜야 한다.

빨리 크게 지어 부동산 대박 내고 ‘먹튀’하려는 세태로는 안전 확보란 불가능하다. 나한테 사고 안 나면 된다, 지금 사고 안 나면 된다, 내 임기 내에 사고 안 나면 된다. 이 같은 마인드로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나의 겁 많음은 그나마 나를 조금 더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겁이 많아진다면 위험 사회의 문제가 조금이나마 더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기본이다. 부디 안전에 대해서 만큼은 겁을 잔뜩 먹자.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