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지 말고 세상을 향해 날아봐”… 한국 장애청년드림팀의 호주 체험기

입력 2014-09-01 03:20
장애청년드림팀 김덕원씨(22)가 지난 22일 호주 울런공 스탠웰 파크 상공에서 현지인 교관과 함께 행글라이딩 체험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 평영 100m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행글라이딩은 처음이었다.
호주 지하철 장애인석((1))은 좌석을 접을 수 있도록 설계돼((2))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다. 지난달 25일 시드니 북쪽 혼즈비 지역의 ‘스튜디오 아츠’ 연습실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이 흰색 천에 얼굴을 부비며 고대 이집트 미라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3)).
적어도 호주에서는 장애인의 여가생활이 사치는 아니었다. 호주에서 만난 장애인 관련 단체 관계자들은 장애인에게 여가를 보장할 수 있는 환경과 접근성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여가는 장애인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자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핵심 재활 프로그램이었다.

◇새로운 나를 찾는다=지난달 25일 찾아간 시드니 북쪽 혼즈비(Hornsby) 지역의 ‘스튜디오 아츠(Studio Artes)’ 1층 연습실에서는 ‘이집트’를 주제로 한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다. 지체장애와 지적장애, 다운증후군 등을 겪고 있는 10여명의 호주 장애인들이 10m 길이의 흰색 천에 자신의 얼굴과 손바닥을 부비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를 형상화한 것이다. 3개 소그룹으로 나눈 뒤 천을 얼굴이나 배 등에 갖다 대며 자신의 몸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직접 체험했다.

장애인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1주일에 2∼3회 모여 무용과 춤을 자유롭게 연습한다. 미술, 음악, 춤을 통해 장애인들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고 집중 육성해 자립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레베카 캔티 공연기획팀장은 “무용과 춤은 취미를 넘어 장애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프로그램 역할을 톡톡히 한다”며 “연말에는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에서는 지역사회 곳곳에 장애인들이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장애인들을 지원하려면 예술과 스포츠 등 여가활동을 늘리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공감대가 있어서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앤드루(23)에게도 스튜디오 아츠는 새로운 삶을 발견한 장소다. 5년째 이곳에서 활동하는 그는 “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쓰고 살았는데 춤을 배우면서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며 “무용은 내 삶의 일부가 됐고, 내 몸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청년드림팀 호주팀장인 김지현 극동대 작업치료학과 교수는 “호주는 장애인과 관련해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뛰어나다”며 “성과 중심적 사고에 그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장애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27개 커뮤니티센터를 운영하며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는 시드니 북부 와링가(Warringah) 커뮤니티센터에서도 야심찬 실험이 진행 중이다. 현재 연인원 70만명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스포츠, 댄스, 예술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이곳에서는 100만 호주달러(약 9억5000만원)를 투입해 ‘컬러로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센터 인근 컬러로이 해변에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놀 수 있는 400㎡ 규모의 놀이터를 짓는 사업이다. 휠체어를 탄 채 그네를 즐길 수 있는 ‘리버티 스윙’ 등 장애인 80∼1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놀이시설이 다음달 들어설 예정이다. 이를 해변에 있는 수영장과 재활치료실 등 복합센터와 연결시킨다는 구상이다.

◇다양한 장애인들의 여가활동=호주의 공공장소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안내표지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2층 구조로 된 지하철 전동차에는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고, 좌석을 접을 수도 있다. 평소에는 노약자들이 이용하다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탑승하면 의자를 접고 장애인에게 그 공간을 양보한다. 시설이나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장애인의 접근성을 염두에 둔 실용적인 아이디어 사례다.

시드니에는 강과 인접한 도시 특성상 페리를 타고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아 선착장과 지하철역이 연결돼 있다. 페리를 탈 때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큼지막한 표지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도심의 모든 횡단보도에는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가 달려 있어 소리를 통해 신호가 바뀌는 것을 식별할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정보도 다양하다. 와링가 카운슬에서는 3주에 한 번씩 장애인 부모들을 대상으로 뉴스레터를 발송한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이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은 뭔지,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안내한다.

컬러로이 해변에서 열리는 장애인 서핑대회에는 장애인 1명당 6∼8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을 지원한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해변 캠프가 열려도 안전 문제 탓에 바다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호주는 장애인이 직접 물놀이를 하고 모래해변을 다닐 수 있는 체험 자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와링가 커뮤니티센터의 재닌 커티스 프로그램 개발담당관은 “호주에서 여가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잠에서 깰 때부터 잠들 때까지의 시간 속에 있는 모든 것”이라며 “장애인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들도 스포츠와 춤, 예술활동을 통해 여가를 즐긴다”고 말했다. 여가에 대한 인식과 발상의 전환. 한국사회가 장애인 복지를 논할 때 빠뜨리지 말아야 하는 과제다.

시드니=글·사진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