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생전에 “나는 하나님의 영감을 조국의 백성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애국가의 작곡자는 하나님의 메신저일 뿐입니다”며 애국가의 작곡자 자리를 극구 사양했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에서 교포들이 태극기를 걸어놓고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따라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 작곡했다고 한다. 작사가는 윤치호 설이 신빙성이 높다.
개화기의 애국가는 10여 가지가 있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 답세’의 후렴구는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 때 불린 ‘애국가’에서부터 등장한다. 대한제국은 1902년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한 ‘대한제국 애국가’를 제정했다. 일제는 애국가를 금지시켰다. 안익태의 애국가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국가(國歌)로 제정됐다.
애국가는 표절의혹에 휩싸이고 국가에서 밀려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축 처지고 부르기도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부분 국가는 혁명과 독립전쟁을 거쳐 국민국가가 형성되던 19세기 후반 이후 제정돼 호전적 성향을 띠는 것이 많다. 미국 국가 ‘성조기’나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 중국의 ‘의용군행진곡’ 등은 전쟁 중 지어졌다. 미국과 프랑스 국가는 법률 등으로 공식 지정됐지만 우리는 영국, 일본 국가처럼 관행으로 정착됐다.
통합진보당의 제창 거부로 수모를 겪은 애국가가 이번엔 음모론에 휩싸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학생들이 부르기 쉽도록 음역을 3도 낮춘 애국가를 새로 제작해 일선 학교에 보급한다고 발표했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에서 앞부분의 ‘대한’이 너무 고음이어서 따라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다. 안익태의 애국가는 오케스트라용이어서 ‘고음불가 애국가’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자 바이올리니스트 김필주씨가 인터넷에 “애국가를 3도 낮게 부르면 단조 기운이 느껴지는 아주 우울하고 어두운 맥 빠진 애국가로 변해 버린다”며 “운동권 노래보다 하위에 두려는 무서운 전략…(중략) 태극기를 조기(弔旗) 형태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음모”라고 비판했다. 애국가를 바꿀 때는 좀 더 신중한 논의가 있어야 했지만 그렇다고 ‘음모’ 운운하며 색깔론을 입히는 것은 지나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한마당-이명희] 애국가 음모론
입력 2014-08-30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