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사는 A씨는 지난해까지 어린이집을 다녔던 딸아이가 올해 6살이 되면서 유치원으로 옮겼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누리과정(만3∼5세 교육과정) 무상교육을 실시해서 유치원비 부담이 줄었다는 얘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6∼7세 때는 보육기관이 아닌 유치원을 다니는 게 좋다는 주위 조언 등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치원 입학은 추첨과정에서부터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 연말 3곳에 추첨을 넣어 1곳에 당첨됐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원비가 너무나 비쌌다. 3곳에 넣었지만 다 떨어져서 어린이집을 좀 더 다닌다는 딸아이 친구에 비하면 사정이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3월이 돼 입학을 하고 매달 원비를 내면서 A씨의 갈등은 점점 커졌다. 매달 40만원 넘게 내는 유치원비 때문이었다. “정부가 지원해주지 않느냐”는 속 모르는 주위의 얘기는 화만 북돋았다. 똑같이 정부지원 22만원을 받았던 어린이집 시절엔 오후 5시까지 아이를 맡기면서 유사한 특별활동 수업을 했을 때 매달 10만원대 후반의 비용을 냈었다. 지금 다니는 유치원을 오후 5시까지 이용하려면 기존 40만원에 종일반 이용비를 3만원 더 내야 한다. A씨를 더 고민시키는 건 다른 유치원과의 차이다. 애초 가장 보내고 싶었던 유치원은 매달 내는 비용이 20만원대다. 거의 공짜라는 국공립 유치원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비슷한 사립 유치원인데, 그저 추첨 운에 따라 매달 몇 십 만원의 비용이 추가됐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 경기도 용인에 사는 B씨도 A씨와 비슷하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아들과 친한 친구들이 운 좋게 한 유치원에 당첨됐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부지원금 22만원을 빼고도 매달 50만원 넘게 더 내야 하는 고가의 유치원이었다. 말로만 듣던 영어유치원도 아닌데, 유치원에 내는 돈이 정부지원금까지 총 80만원에 육박한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이미 학기가 시작돼 유치원을 옮기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아이가 즐거워한다’는 것 하나에 위안 삼으며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내고 있다.
더 이상한 건 정부의 유치원비 공시 사이트에 올려진 유치원의 학부모부담금 내역이었다. B씨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올린 학부모부담금은 정규과정과 방과후 과정을 모두 합해 43만원 수준이었다. B씨가 이달에 입금한 금액은 53만원.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대도 10만원 차이는 너무하다 싶어 원비 내역을 들여다봤지만, 어디서 어떤 차이가 생긴 것인지 따져보는 건 역부족이었다.
정부 막대한 예산 들이는데, 체감 낮은 유치원비 지원 정책
유치원생을 둔 부모라면 A씨와 B씨의 얘기가 결코 낯설지 않다. 정부가 2013년부터 누리과정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고 22만원을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국공립 유치원을 다니거나 교회나 성당 같은 법인 부설 유치원을 다니는 경우가 아니라면 실제 유치원 학비를 ‘무상’으로 느끼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29일 공개된 2014년 8월분 유치원비 공시 내역을 봐도 서울 지역 사립 유치원의 평균 학부모부담금은 22만원대다. 정부 청사가 들어선 세종시(8만원대)와 고령화가 심해 저출산 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많은 강원도(7만원대), 전남(8만원대), 특수지역인 제주(6만원대)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광역시·도의 유치원비 학부모부담금은 10만∼20만원 수준이다.
유치원이 각자 운영하는 특성화 수업 등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 많은 데다 정부 지원을 전후로 기본적인 교육비도 큰 폭으로 인상됐기 때문이다. 유치원 정보공시 사이트 ‘유치원 알리미’ 공시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정부 지원이 있기 전인 2012년 8월 기준 만 4세의 전국 평균 월 유치원교육비(방과후 과정 교육비 포함)는 45만1268원이었다. 그런데 정부 지원 2년차인 올해 8월의 월평균 교육비는 2012년보다 5만7390원 오른 50만8658원이다. 서울 지역의 올해 8월 월평균 교육비는 60만2409원으로 2012년 8월(47만7277원)보다 12만5132원 올랐다. 정부지원금 22만원에서 이 같은 인상분을 빼면 실제 학부모가 체감할 수 있는 효과는 10만원 안팎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공적 영역… 비용은 여전히 철저한 시장논리
더 큰 문제는 같은 권역 안에 위치한 사립 유치원 간에도 운영방식, 교육 프로그램 등에 따라 학부모부담금이 0원인 곳에서부터 80만원이 넘는 곳까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가격 차이는 ‘시장논리’에서 비롯된다. 사립 유치원은 오랜 시간 사적 영역에 방치돼 있었다. 좋은 교육 프로그램과 환경에 자신이 있는 유치원은 그만큼의 가치를 반영한 고가의 유치원비를 받는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유치원 사정이 ‘내가 원하는 유치원을 골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데 허점이 있다. 공급자인 유치원이 소비자인 학생을 추첨해 골라가는 상황에서는 시장 논리가 적용될 수 없다. 특히 맞벌이 증가, 유아 교육에 대한 수요 증가 등으로 과거와 달리 3∼5세 유아의 교육 기관 이용은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정부가 누리과정에 대한 무상교육 지원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유아 교육이 공적 영역으로 들어온 만큼 유치원비에 대해서도 공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 김은설 정책연구실장은 “유치원은 가격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다. 유치원비 내역 등도 표준화가 안 돼서 소비자가 정확히 비교하기도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사립 유치원비를 정부가 삭감하라고 강제하거나 관리할 법적 근거는 없다”면서 “대신 재무회계 등의 기준을 도입해서 이를 따르도록 규제하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한편, 공립 유치원 등을 늘려 공적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영 이도경 기자 mymin@kmib.co.kr
[유치원비의 진실] 어! 만3∼5세 아이들 무상교육 아니었나?
입력 2014-08-30 0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