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이 되고 싶었다.” 한 지식인이 노년에 쓴 회고록 성격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다가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할 자격이 있을 정도로 그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추구해 왔다. 하지만 그는 “팔순을 넘어보니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고 평생 동안 찾아온 진리의 길이 어딘지를 아직도 알 수 없다”는 고백을 했다. 이런 고민은 유독 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뛰어난 지식인이라고 해서 어느 누가 “나는 인생의 답을 찾았다”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칠순의 또 한 명의 지식인은 병마와 싸우는 중에도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자신이 구상해 왔던 작품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병마와 투혼을 벌일 정도이니 지인들과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는 병마가 자신을 허물어뜨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처음엔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절망이나 체념조차도 다른 종류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달리했다. 이처럼 두 지식인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세상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다. 다행스러운 일은 이따금 지식인들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특히 노년의 끝자락에 처하거나 위중한 병과 투쟁을 전개하는 지식인들은 인생에서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모두 다 제거해 버린 자신의 내면세계를 글로서 혹은 말로서 고스란히 드러내곤 한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치열하다는 표현으로 모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온 지식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점 더 깊고 진한 행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사업을 크게 일구어 내는 데 성공한 사람에게도 참행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업이란 겉으로 견고하게 보이더라도 늘 달려야만 하는 외발자전거와 같다. 전전긍긍이나 노심초사 등과 같은 표현과 늘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업인 점을 염두에 두면 대단한 사업적인 성취도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성취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주변에서 경제적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 지인들을 만나면서 갖게 되는 생각이기도 하다.
진정한 행복의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나는 그 답이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우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됐다. 누구든지 믿으려 노력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게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내가 아는 한 지식인은 “나도 잘 믿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여러 차례 예배당 문을 두드리다가 마침내 쉰 문턱을 넘어선 뒤 회심을 하게 된 나는 믿음을 두고 “나는 믿었다”는 표현보다는 “나는 믿어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우연히 들었던 한 목사님의 설교에서 “아, 저게 진리구나”라는 깨달음을 순간적으로 갖게 됨으로써 이후 참으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다. 젊은 날 읽다만 성경이 오랜 세월동안 서가에 꽂혀 있었지만 예배당을 나가지 않은 다음부터 이를 진지하게 읽어본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 성경이 회심 이후에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논리와 이성만으로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오로지 성령의 역사하심이란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의 길 혹은 성공의 길에 대해 다양한 저서를 집필해 온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회심 이전에는 이런저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이야기하는 데 그쳤다. 회심 이후에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예전에 이야기하던 것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방법은 자신의 삶을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은 된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친다면 그런 성공과 행복은 완전함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모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자체만으로 이미 성공한 사람이자 행복한 사람이다. 물론 그런 성공과 행복이 인간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노력해도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성공과 행복의 토대이자 핵심,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한다. “이 길 이외에 다른 어떤 길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자신에게 물어보곤 하지만 “다른 길은 없다”는 그런 답을 스스로 확인하게 된다.
공병호 <공병호연구소 소장>
[공병호의 세상 읽기] 다른 길은 없습니다
입력 2014-08-30 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