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A가 허겁지겁 친구 B, C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내가 살인을 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말하는 A의 얼굴엔 긴장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 서려 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수십 년 감옥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B는 A를 숨기거나 도피시키는 게 친구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공적 정의보다 친구관계에 충실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에 반해 C는 생각이 달랐다. A가 정말 살인을 했다면 법의 심판을 받고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범죄 사실을 숨기려 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개인적 윤리보다 공적 정의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러분의 의견은 무엇인가?
지난 4월 16일 수학여행길에 오른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104명, 선원 33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오전 8시40분쯤 배는 ‘쿵’하는 소리와 함께 침몰하기 시작했다. 선장은 선원들에게 승객들의 안전 조치와 관련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오전 9시쯤 배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학생을 포함한 승객 일부는 필사적으로 헤엄쳐 탈출했지만 대부분은 바닷물에 휩쓸리고 갇혔다. 수많은 생명이 숨져 갔다.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은 지난 4월 6일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로 쓰려져 병원으로 후송됐고 이튿날 숨졌다. 선임병들은 윤 일병이 숨지기 전 한 달 동안 매일같이 때렸다고 한다. 밤새워 가혹행위를 한 뒤 다음날 수액주사를 맞히고 또 때리기도 했다. 윤 일병 사후 국방과학연구소가 검시를 했다. 좌우 갈비뼈 14개가 부러져 있었고 비장은 파열된 상태였다.
세월호 참사와 윤 일병 사망 사건은 공적 윤리가 결여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공적 윤리는 인간의 양심과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며 개인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몇몇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많은 구성원들이 서로 연결된 사회 공동체 속에서 그 공동체를 위해 마땅히 실천해야 할 도리를 뜻한다.
세월호는 수많은 목숨이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 승객들에게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7차례나 되풀이했다. 이준석 선장과 선원 대부분은 승객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배에서 빠져나왔다. 세월호와 해경은 31분간 교신했지만 승객들에게 탈출하라는 명령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세월호 점검을 맡은 해운조합은 세월호가 출항하기 전 차량과 화물 적재량을 허위로 기재했지만 점검하지 않고 출항시켰다. 세월호 안전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운항관리자는 나랏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도 선원 안전교육을 소홀히 했고 적재한도 초과 확인을 안 했다. 해경, 선장, 선원들의 공적 윤리 부재는 미스터리급이다.
윤 일병은 ‘음식 먹을 때 쩝쩝 소리가 난다’ ‘선임병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잔혹하게 맞아야 했다. 주범 이모 병장의 엽기적 행위를 동료 병사들은 저지하지 않고 동조했다. 직속상관 유모 하사는 이 병장에게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군 장성들은 이 잔혹한 사건을 알면서도 윗선에 보고하지 않고 쉬쉬하려 했다. 고참의 잔악한 폭력과 괴롭힘을 감내하라는 것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이 군기로 둔갑된 양상이다. 사적 질서, 악마의 질서가 군율 위에 있었다. 공적 윤리, 공적 정의의 실종이다.
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적 윤리의 부재 및 공적 정의의 실종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가. 1차적 원인은 공동체적 시민의식의 부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공적 의식 고양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진정한 위정자라고 한다면 공적 윤리가 결여된, 성숙하지 못한 시민 의식만 탓하면 안 된다. 공적 의식 형성의 근간이 되는 공적 룰이 구성원 모두를 상대로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는가, 나라 지도자들이 공적 윤리와 공적 정의를 실현하고 실천하는 데 모범적인가 하는 것부터 따져 봐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은 공적 룰을, 지도자를 믿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공적 윤리의 결여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위정자들은 곱씹어 봐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여야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 존 로크는 저서 ‘통치론’을 통해 입법부와 국민의 관계, 그리고 위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동체 보존을 위해서 활동하는 잘 조직된 국가에는 최고 권력, 곧 입법권이 있는데 거기에 모든 권력이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 입법권은 일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활동할 수 있는, 인민이 신탁한 권력이므로 입법부가 신탁 목적에 반해서 행동한다면 그 입법부를 폐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권력은 여전히 인민에게 있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은 (인민을 위한 공동선이라는 방향성을 가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탁으로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에 권력이 그 목적을 명백히 소홀히 하거나 위반하면 신탁은 필연적으로 철회된다.”
이학로 편집부 차장 hrlee@kmib.co.kr
[창-이학로] 실종된 공적 윤리
입력 2014-08-30 03:41 수정 2014-08-30 1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