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올리기 괴로운, 아픈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일입니다. 그날 오전 8시48분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해상에서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은 한마음이 돼 TV와 인터넷을 통해 보도되는 뉴스 속보에 온 정신을 쏟았습니다. 몇몇 방송사에서 '전원 구조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모두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은 현실이 되는 듯했습니다. 놀란 가슴을 겨우 쓸어내렸을 때쯤 대부분 승객들이 여전히 배 안에 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때 이후 대한민국은 '세월호 비극'의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태 발생 136일째인 29일 현재까지도 10명의 실종자가 깊고 어두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요. 크게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일까요. 대중은 매체를 믿지 않게 됐습니다. 신뢰가 무너지면서 나타난 상실감은 SNS로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빅데이터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사건
지난 28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는 ‘소셜 미디어와 한국 저널리즘: 세월호 사건을 중심으로 본 소셜미디어의 영향’이란 주제로 특별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발제자로 나선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SNS를 통한 현장성, 정보성, 탄력성, 경제성, 민주성 등이 반영됐다”고 평가하면서도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침해와 정보 과잉, 정파적 글쓰기, 정보의 투명성 문제가 드러났다”고 꼬집었습니다.
이 발표에는 빅데이터 분석기관인 스토리닷의 분석 결과가 첨부됐습니다. 스토리닷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는 지금까지 SNS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사건입니다. 세월호 관련 키워드인 ‘세월호’ ‘여객선’ ‘진도’ ‘팽목항’ ‘안산’ ‘단원고’가 SNS에서 언급된 횟수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사고 다음 날인 17일 37만건을 최고점으로 23일까지 평균 25만건 이상 언급됐다고 합니다.
이후 언급이 점차 줄어들다가 유가족들이 5월 9일 청와대 앞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난 후 24만건으로 증가했습니다. 6·4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급격히 감소하며 다른 이슈들이 떠올랐고, 7월 말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 유가족의 광화문 농성, 단식 투쟁 릴레이, 유병언의 시신 발견 등 이슈가 이어지자 다시 급증했습니다.
스토리닷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4월 17일부터 7월 23일까지 세월호 관련어는 SNS에서 총 990만건가량 언급됐다고 하더군요. 하루 평균 10만건에 달하는 수치로, 관측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된 연관어는 유가족, 참사, 학생, 국회, 박근혜 대통령 순이었습니다.
드러난 SNS 매체의 명암
무엇이 이 시기에 대중을 SNS에 몰두하게 만들었을까요. 일단 SNS의 최대 장점인 ‘현장감’이 확실히 빛을 발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정보는 쏟아졌고 의제 설정 과정을 건너뛴 수많은 정보의 ‘민낯’이 그대로 불특정 다수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근거리에 있듯 세월호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사고 그 자체를 넘어 인간 존엄성과 안전 불감증, 불법이 만연한 사회 곳곳의 모습에 대한 담론이 함께 오고 갔습니다. 거대한 대국민 소통이 이뤄진 셈이죠.
반면 우리를 낙담하게 하는 ‘SNS의 나쁜 버릇’도 여럿 있었습니다. 세월호가 완전히 바다에 잠긴 후 발송된 ‘생존자가 있다’는 문자 메시지,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생존자 사칭 SNS글, 언니 친구에게 들었다는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져 간 이 이야기 때문에 유가족과 온 국민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구조 과정에서 있었던 ‘다이빙 벨’ 사용 논란이나 ‘정부가 민간 잠수사의 구조 활동을 막았다’는 주장 또한 지지부진한 구조 작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확대 재생산 되는 유언비어의 배경엔 ‘불신’이 깊이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수사 결과 발표됐지만 의심은 꼬리를 물고 지금껏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권 침해와 혐오감을 주는 내용들 또한 인터넷상을 떠돌았습니다. 숨진 승객들이 직접 찍은 동영상 파일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그대로 공개되면서 충격이 증폭됐습니다. 정보 소통의 위험성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입니다.
전통 매체의 자정작용 시작, 새로운 저널리즘의 좌표 설정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대중의 뭇매를 맞은 집단 중엔 언론이 손꼽힙니다. 이와 함께 SNS가 저널리즘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SNS 저널리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이해는 걸음마 단계입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심의기준 제11조에는 재난 보도 규정이 마련돼 있습니다. “언론은 재해 및 대형 참사 보도에서 그 참상을 지나치게 상세히 보도하여 이재민 등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독자 또는 시청자에게 불안감이나 혐오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전통 매체는 물론 SNS도 위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손 교수는 여기에 세 가지 과제를 던집니다. 팩트 체킹 시스템(Fact checking system)의 도입, 사회적 소통에 대한 체계적인 미디어 교육, 사회적 합의영역에서 전통매체-SNS-포털사이트의 구조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는 “전문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쟁점 사안에 대해 시비를 가려줄 필요가 있다”며 “이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설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표현의 자유와 공공선의 관점 사이에서 정보를 이용하고 생산할 수 있는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저널리즘의 철학과 역할, 기능을 합의할 수 있는 범사회적 기구도 운영돼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미 시작된 긍정적인 움직임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취재·보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언론계의 재난보도준칙이 다음 달 16일 공개됩니다.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5개 언론단체로 구성된 재난보도준칙 공동검토위원회가 자발적인 토론을 통해 이뤄낸 결과입니다. 여기엔 피해자 인권 보호, 취재원 검증, 미성년자 취재 제한, 재난법규 숙지 등이 포함됐고 기자에 대한 사전 교육과 사후 모니터링, 자율 심의 조항도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세월호 사고로 본 SNS 저널리즘] 한국 사회 ‘빛과 그림자’, 스마트폰 통해 폭발했다
입력 2014-08-30 0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