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구의 영화산책] 헤이즐이 가르쳐 준 죽음교육

입력 2014-08-30 03:26

‘사랑과 죽음’은 모든 예술의 뿌리이자 진리를 체감시키는 가장 놀라운 방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롬 5:8)이자 감동의 원천이 되듯 죽음 앞에서 사랑은 빛을 발하고, 사랑을 통해 죽음은 그 의미를 발산한다. 이것은 곧 죽음을 외면한 사랑이란 진실하지 못한 일이며, 사랑 없이 죽는 일 또한 가장 덧없는 것임을 나타낸다. 사랑한다면 죽을 때까지 사랑할 일이고, 이왕 죽을 거라면 사랑하면서 죽을 일이다.

영화 ‘안녕, 헤이즐’은 말기암 선고를 받고 살아가는 십대 남녀의 ‘사랑과 죽음’을 통해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의 모습을 긴 여운을 드리우며 그려내고 있다.

여주인공 헤이즐(쉐일린 우들리)은 갑상선암이 전이되는 바람에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하는 16세 꽃다운 청춘이다. 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까닭에 항상 산소통이 들어있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지만 말기암 환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명랑쾌활하다. 비록 암환자 모임에서 만난 두 살 연상인 남자친구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가 먼저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녀의 짧은 사랑은 끝을 맺고 말지만 상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채 그녀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눈물을 흘리고 신세 한탄으로 이어지는 신파극으로 이해되기 십상이지만 ‘안녕, 헤이즐’의 경우는 다르다.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이별의 순간에도 쿨한 척하는 요즘 십대들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자세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첫째, 죽음에 대한 이해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헤이즐이 말한 대로 요즘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산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예를 들어 추모사를 낭독하는 일이란 원래 죽은 이와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지만, 사실 죽은 사람은 그 추모사를 들을 수 없다. 추모사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연설인 셈이다. 그렇다면 죽은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추모사가 있다면 당연히 죽기 전에 들려주는 것이 옳다.

영화에서 헤이즐은 어거스터스가 죽기 전 교회에서 자신이 읽을 추모사를 들려준다. 그를 사랑하고 또한 함께했던 시간이 얼마나 감사했는지를 얘기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죽어가는 이 앞에서 사랑과 감사를 말한다는 사실이. 또한 이를 듣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둘째, 영화는 죽음의 순간에 함께할 동행자의 가치를 새삼 일깨우고 있다. 로브 라이너 감독의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카터(모건 프리먼)와 에드워드(잭 니컬슨)는 죽기 전 해야 할 일을 정한 후 그 일을 함께 실현해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죽기 전에 한 일보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함께할 동행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동행자의 역할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죽어가는 사람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헤이즐이나 어거스터스가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말에 귀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들은 환자가 임종을 맞을 때 옆에서 손을 붙잡아주며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있어줄 것을 약속한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소피아대학교에서 죽음학을 강의하는 알폰소 디켄 교수는 그의 책 ‘행복한 죽음’에서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맞을 때 나타나는 독특한 심리에 대해 언급한 일이 있다. 그것은 ‘기대와 희망’이라는 심리다.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살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가운데 죽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다. 임종을 앞둔 신앙인 가운데는 자신을 걱정하기보다 세상에서 살아갈 남은 가족을 오히려 위로하며 죽음을 맞는 사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의 진정한 현실에 대응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라 할 수 있다.

강진구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