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도란도란 들려오는 사람의 말소리/ 노을빛이 숲속 깊이 들어와/ 다시 푸른 이끼 위로 비치네.”
이 시는 이백, 두보와 함께 중국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왕유의 대표작 ‘녹채(鹿柴)’다. 깊은 숲속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다니 누가 속삭이는 소리일까. 물론 그 시구는 깨달음의 경지를 읊은 내용이지만, 여기선 다르게 해석해 본다. 숲속의 나무와 풀들이 서로 속삭이는 소리일 거라고 말이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므로 동물처럼 근육의 수축 운동을 위해 필요한 신경이 없다. 또한 눈과 귀도 없으니 당연히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식물들도 다양한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아카시아나무는 염소 같은 초식동물이 자신을 뜯어먹으면 타닌 성분을 내뿜어 동료들에게 알린다. 그러면 주위의 아카시아나무들은 곧바로 나뭇잎의 타닌 성분과 단백질을 결합시켜 염소가 소화시키기 어려운 성분으로 바꿔버린다. 휘발성 물질로 위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식물들은 뿌리를 통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페놀이나 플라보노이드, 당, 유기산, 아미노산 등의 수용성 화합물로 구성된 암호를 내뿜어 뿌리끼리 정보를 교환하거나 주변의 수많은 박테리아나 균류들과 소통한다. 과학자들은 식물들의 이 같은 의사소통 수단을 ‘녹색 언어’라고 부른다. 시인 왕유도 미처 듣지 못한 식물들의 말소리를 과학이 밝혀낸 셈이다.
그런데 최근 식물들이 사용하는 새로운 언어 하나가 추가로 발견됐다. 단백질을 만들 때 DNA에서 필요한 염기서열을 그대로 복사해서 생기는 물질인 ‘전령 RNA’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연구진이 기생식물인 새삼을 숙주식물인 토마토 및 애기장대에서 자라게 한 뒤 염기서열 관계를 분석한 결과 숙주식물과 기생식물 간에 서로 전령 RNA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를 잘 이용할 경우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기생식물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 식량난을 해결할 수도 있다. 식물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면 기후 및 영양분 등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금방 파악해 대처할 수 있다. 또한 종이 다를지라도 말이 서로 잘 통하는 식물끼리 전략적인 위치에 식재하여 수확률을 높이는 방법도 가능하다. 어쩌면 농업의 제3혁명이 식물의 언어 해독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
[사이언스 토크] 녹색 언어
입력 2014-08-30 0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