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선제적 조치로 디플레 터널 피해야”

입력 2014-08-29 04:59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느닷없는 디플레이션 진단에 기재부가 황급히 사태 수습에 나섰다. 기재부는 "'내수 부진이 장기간 지속되면 디플레이션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한마디로 아직은 한국경제가 디플레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디플레 위기에 접어들었다"는 반응과 "아직은 아니다" 쪽으로 갈려 있어 최 부총리 발언이 경기 논쟁에 불을 댕긴 셈이 됐다. 정부 최고 경제정책 수장의 디플레 진단이 한국경제 사상 초유의 일인데다 이미 20년 이상 디플레를 겪고 있는 일본 사례로 볼 때 사안 자체가 경제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리막 달린 지 오래, 기를 써야 산다=“내리막길을 달린 지 오래, 곧 시궁창에 빠지려 하고 있다. 평탄한 길도 아니라서 기를 써야 겨우 올라갈 수 있는 국면이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28일 경제 상황을 내리막길을 내닫는 자동차에 비유했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로 미뤄보면 디플레 초입이라는 표현도 부족하다는 설명이었다.

오 학회장은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6%에 머무르는 한국의 상황은 1992년의 일본과 매우 흡사하다”고 경고했다. 92년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1년 3.3%에서 급락한 1.71%를 기록했고, 94년부터 0%대에 접어들었다. 95년에는 -0.12%로 강력한 디플레 국면을 보였다. 경제학계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으로 표현하는 92년부터 2001년까지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평균 0.43%를 기록했다.

현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 수준이 아니라고 해서 안심하고 디플레 국면을 부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도 같은 견해다. 성 교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개월 넘도록 1%대라면 디플레로 봐야 한다”며 “상당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경제 상황을 ‘장기적인 침체 고착화’라고 명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처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 이하로 떨어진 때가 온다면 “정말 망가진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적극적인 통화정책 수반돼야=경제학계 전체가 디플레 진단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연세대 경제학부 김정식 교수는 “저물가·저성장으로 들어선 것은 틀림없지만 일본을 언급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는 아닌가 싶다”고 신중한 의견을 드러냈다. 그는 최 부총리 언급에 대해 “저물가 우려의 차원에서 나온 말”이라며 기재부의 해석에 손을 들어줬다.

학자마다 위기의식이 다르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전혀 경험하지 않은 터널로 향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년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디플레 경험이 별로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디플레를 판단해야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피해가 크다”며 “지금까지 한국경제는 물가를 올리겠다는 목표를 가진 적이 없었고, 자제하는 데에만 몰두해 왔다”고 말했다.

디플레 터널을 피할 방법은 무엇일까. 성 교수는 “정부가 얘기하면 한국은행이 못 이겨 금리를 조금 낮추는 통화정책 방식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좀 더 과감한 인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오 학회장도 “0.25% 포인트를 인하한 것으로 생색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 학회장은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방법, 적극적인 정부 재정지출을 강조했다. 그는 “기업의 돈을 가계로 억지로 끌어내면 성장 동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 테네시강의 댐 건설과 같은 적극적인 정부 재정지출이 필요하다”며 뉴딜 정책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