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문단열 (6) 5억 빚더미 ‘죽음 문턱’서 만난 사랑의 하나님

입력 2014-09-01 03:09
문단열 전도사가 2002년부터 진행한 EBS 영어 교육 프로그램 ‘잉글리시 카페’의 한 장면.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학원 수입은 급감했다. 나는 교육업계에서 성공한 청년사업가로 평가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하루에도 10통 넘는 채권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나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는 전화였다.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만약 당시 대출금이 1억∼2억원 수준이었다면 빚을 탕감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5억원은 내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나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나이는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대출금을 어디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갚아야 할지 계획조차 세울 수 없었다. 절망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1990년대 말, 언론에서는 외환위기로 경영난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업가들 이야기가 자주 보도됐다. 나는 좌절을 거듭하다 삶을 포기한 그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나를 구한 건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에서 들은 고(故)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였다. “제사장 옷에 12개의 보석이 박혀 있듯 하나님은 자신의 옷에 당신의 이름을 박아놓았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설교를 듣는데 울음이 터졌다. 어린시절 교회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목회자였던 아버지의 설교를 들으며 신앙을 키웠던 시간, 고등학교 시절 철야기도를 하며 지새웠던 밤….

완벽하게 잊고 살았던 추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행복했던 시절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거 있었던 자리에서 나는 지금 얼마나 멀리 와버린 것일까’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가’…. 예배는 끝났고, 나는 우느라 눈이 퉁퉁 부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미로 같은 정글에서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알려주는 하나님 음성이 곧 구원일 것이다.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는 내게 구원이었다. 정글에서 길을 잃어 죽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자책하던 나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말씀은 내 삶의 터닝 포인트였다.

당시의 깨달음은 신앙적으로도 성숙하는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내가 아는 하나님은 ‘승리자의 하나님’이었다. 믿음의 끝엔 항상 승리가, 성공이 있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됐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무리 멀리 엇나가도, 완전히 실패해도 보듬어주는 분이셨다. 그렇게 나의 신앙은 ‘절반의 신앙’에서 온전한 신앙으로 거듭났다.

심기일전한 나는 돌파구를 모색했다. 학원 사업을 과감히 접기로 결심했다. 대신 온라인 교육업체를 차려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때는 1999년. 인터넷 열풍을 타고 수많은 벤처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난 시절이었다. 그해 12월 31일, 나는 ‘펀글리시’라는 인터넷 영어강의 업체를 설립했다. ‘펀글리시’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루가 다르게 수강생이 늘었다. 급기야 2003년에는 연매출이 24억원을 기록했다.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문의가 잇따랐다. 2001년 ‘김치 발음에 빠다를 발라주마’를 시작으로 영어 서적도 여러 권 집필했다.

케이블 교육 채널인 재능방송을 통해 방송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이때쯤이었다. 펀글리시의 원어민 강사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제작진의 부탁으로 나는 ‘샬라맨’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게 됐다. 선글라스를 끼고 방송 도중 등장해 영어 발음을 가르쳐주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어느 날 전국에 내 얼굴을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EBS 성인 대상 영어 교육 프로그램인 ‘잉글리시 카페’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프로그램은 이전까지는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구성과 연출로 첫 방송과 동시에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스타 강사’의 삶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