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장이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지나친 물가 하락으로 경제가 침체될 수 있다는 이른바 '디플레' 논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성장에 방점을 두는 정부와 물가안정을 목표로 하는 한국은행의 경기상황 인식차가 드러나면서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 논란이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경환(사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서울 반얀트리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한국이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물가안정 목표 범위가 2.5∼3.5%로 돼 있는데 3년째 하한선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저물가 기조가 오래 지속되면 디플레이션이 심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가가 안정돼 있기 때문에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필요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는 2023년 6월이 만기인 한국 인플레 연계 채권(일명 링커스)이 이달에 1.9%의 투자 손실을 내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한은이 연내 금리를 한 차례 더 내릴 것이란 관측이 시장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11월 1.6%를 기록한 이후 21개월째 1%대에 머물고 있다. 이는 한은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범위의 끝자락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 부총리는 "최근 경제 전반에 퍼져 있는 축 처진 분위기를 반전시킬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며 "금기시한 재정적자 확대, 부동산 시장 정책을 과감하게 하지 않고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형환 기재부 1차관도 "앞으로 2∼3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디플레에 진입했다면 물가 하락과 경제 침체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 외에 기준금리 인하와 통화량 확대 등 금융완화 정책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4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지금은 디플레이션으로 빠질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로경제처럼 물가 하락 압력이 넓게 퍼져 있고 저물가가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을 유발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학자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을 보면 일본이 1992∼93년에 겪었던 상황과 매우 비슷하고 경제성장률을 봐도 그렇다"며 "일본도 안심하다 장기 디플레이션에 올라섰는데 우리는 굉장히 노력해야 디플레이션 국면을 돌이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은 성장률이 마이너스 방향으로 갈 정도였는데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고, 저물가·저성장이라고 해도 현재는 디플레이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재중 이경원 기자 jjkim@kmib.co.kr
최경환, ‘디플레’ 논쟁 불붙였다
입력 2014-08-29 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