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경찰 자격이 없는 놈이다. 너 같은 쓰레기는 공무원이 될 수 없어. 반드시 옷을 벗기겠다.” 서울 송파경찰서 가락지구대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최근 술에 취한 피의자에게 이런 욕설을 들었다. 피의자를 조사하는 40여분 동안 이유도 없이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지구대에 와 있던 민원인들이 이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우상진 가락지구대장은 28일 “주취자들이 업무를 마비시킬 정도로 난동을 피우고 심한 욕설을 해도 경찰은 다 참아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견(犬)찰, 민중의 곰팡이, 짭새…. 경찰을 비하하는 은어는 셀 수 없이 많다. 사건 현장에서도 잘못을 저지른 피의자가 되레 경찰에게 욕을 퍼붓는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실제 ‘경찰관 모욕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사례가 날로 늘고 있다. 경찰관 모욕죄를 놓고 경찰은 “이 방법이 아니면 거친 피의자들을 제압할 수가 없다”고 호소하고, 인권단체들은 “공권력 남용 및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관 모욕죄 월평균 처리 건수는 지난해 86건에서 올 상반기 110건으로 늘었다. 피의자가 경찰 수사를 방해할 정도로 과도한 비방·조롱·욕설 등의 행위를 할 때 적용된다.
국가인권위원회 최은숙 조사관은 지난 27일 서울 중구 인권교육센터에서 열린 ‘경찰관 모욕죄 현행범 체포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에서 “지구대나 파출소 경찰관이 주취자 등에 대응하며 궁여지책으로 모욕죄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무리한 법 집행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도 늘어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인권 활동가들은 경찰이 모욕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A씨는 집 나간 고양이를 찾기 위해 집 근처 트럭 밑을 둘러보고 있었다. 때마침 인근을 순찰하던 경찰이 A씨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겨 불심검문을 했다. 검문 과정에서 고양이는 도망쳤고, A씨와 경찰 간 승강이가 벌어졌다. 경찰이 먼저 A씨를 향해 ‘이 XX’라고 욕을 했고, 이에 A씨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욕설을 섞어 맞대응하자 경찰은 그를 모욕죄로 현행범 체포했다. 모욕죄는 모욕 행위가 여러 시민이 있는 장소에서 일어나고 시민들이 그 행위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상황에 한해 성립 가능하지만 경찰이 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법을 집행한 것이다.
모욕죄 적용 과정에서 경찰이 무리하게 물리력을 행사한 경우도 있었다. 70대 노인인 B씨는 지난해 6월 피의자로 연행된 인도인 C씨의 통역 요청을 받고 해당 지구대를 찾았다. 그러나 B씨는 변호사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구대 출입을 거부당했고, 지구대 밖에서 10여분간 항의하던 중 모욕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억지로 수갑이 채워지는 과정에서 B씨는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이성기 성신여대 법대 교수는 “모욕죄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공권력 남용을 막으면서 공무집행이 방해받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기획] ‘경찰관 모욕죄’ 처벌 는다는데… 공권력 확립? 권력 남용?
입력 2014-08-29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