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역시에서 홍어로 유명한 전남 나주 영산포를 향해 13번 국도를 따라 30분쯤 가다 보면 '화탑 한우직판장'이라는 대형 입간판이 눈에 띈다. 5m 높이를 훌쩍 넘는 입간판은 시골마을로는 드물게 화려한 변신에 성공한 전남 나주 세지면 송제리 화탑마을의 이정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지역사회공헌형'으로는 전국 제1호 사회적기업으로 인증한 이곳은 '화탑영농조합법인=주민공동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곳이다. 전체 74가구 154명의 주민 가운데 72가구 151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9년 취락개선사업을 계기로 화산마을과 탑동마을의 첫 글자를 따 생겨난 화탑마을은 2000년대 중반까지 그저 그런 시골마을에 불과했다. 13번 국도에서 700m 이상 더 들어가야 하는 이 마을의 관광자원은 1980년 전남도가 유형문화재 제78호로 지정한 6.6m 높이의 송제리오층석탑(고려시대)이 유일하다. 청장년이 드문 마을에서는 설과 추석 등 명절 때나 가끔씩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평균 연령 60대 후반의 화탑마을은 극심한 이농현상과 함께 여느 시골마을처럼 쇠잔해 갔다.
하지만 2008년 4월 영농조합법인이 꾸린 1000㎡ 면적의 한우직판장이 문을 열면서 화탑마을은 연평균 5만여명이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암소 한우 A+등급 이상만 고집한 데다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우직판장은 첫해에만 2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개업 9개월 만에 거둔 눈부신 성과다. 부존자원이 전혀 없는 곳에서 상전벽해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일손이 부족해 그냥 공터로 놀리는 논밭이 늘어가던 시골마을에 농사일 외에도 가구당 평균 3000만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한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어지는 법. 한적한 마을에 도시에서 온 손님들의 행렬이 줄을 잇자 불가피한 갈등도 겪었다. 이익배분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등 후유증이 뒤따랐다. 화탑마을을 본뜬 한우매장이 인근 다른 마을에도 잇따라 개장하는 등 위기감도 고조됐다. 그러자 사분오열되던 주민들은 마을 살리기에 다시 머리를 맞댔고 '법인 해산'과 '공동체 파괴'라는 파국을 막기 위한 해법 찾기에 골몰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농법인 초대 사무장을 지낸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의 김병한(63)씨를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10여년 만에 교단에 복직했다가 2011년 고교 교감에서 명예퇴직한 김씨는 한동안 일하던 영농법인이 내홍을 겪자 나주시립도서관 사서로 자원했다. 하릴없이 책읽기로 수개월을 소일하던 그는 주민들의 '삼고초려'에 잘사는 고향 만들기에 여생을 바치기로 했다. 인생 제2막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스마트 마을회계'로 명명한 상시기장 등 정확하고 투명한 회계방식 도입이 그 출발이었다.
이에 따라 화탑마을 한우직판장의 수입과 지출은 그날그날 온라인 상시기장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전통을 갖게 됐다. 전열을 재정비한 마을주민들도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힘을 모았다. 컴퓨터 조작능력이 전문가 수준인 김 위원장과 주민들이 운영하는 화탑마을 페이스북은 현재 7100여명의 팔로어를 갖고 있다.
호재도 뒤따랐다. 2012년 7월 당시 여당 대선후보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방문해 화탑마을을 농촌발전의 모범사례로 손꼽았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인 지난해 4월에도 화탑마을을 창조경제의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지난 3월 말에는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이곳을 찾기도 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김 위원장과 주민들은 이제 단순한 한우 생산에서 벗어나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부터 화탑마을에 농촌의 생명력과 관광, 선진적 유통구조를 결합한 원스톱 '6차 산업마을'을 뿌리내리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주민들은 노인회와 부녀회 작목반 영농법인 마을회 등 5개 단체 대표로 구성된 '상임위'를 최고의결기구로 삼아 원만한 마을기업 운영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편영화 '허름한 의자'와 '귀향'을 직접 제작해 마을홍보에 활용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한 나주뿐 아니라 광주지역 유치원·초등학생의 각종 체험활동을 유치하고 있다. 방문객들의 별자리 관찰을 위한 고성능 천체망원경도 3대 설치했다.
이와 함께 50여종의 허브나무 재배와 유정란 생산을 체계화하는 등 다각적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를 활용한 웰빙 힐링허브와 생활과학·밤하늘 별자리·마한문화 체험 등은 마을주민들이 의욕적으로 장착한 21세기형 신무기다. 도시를 능가하는 고소득과 한솥밥을 먹는 마을공동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주민들의 신념이 원동력이 되고 있다. 화탑마을 막내나 다름없는 송민종(48) 영농법인 연구개발실장과 나종섭(48) 마을 청년회장은 영농법인 김 위원장의 좌청룡 우백호다. 동갑내기인 이들은 마을의 장기적 발전을 이끄는 쌍두마차로 '잘사는 농촌' 건설을 위해 촌각을 아끼고 있다.
김 위원장은 "화탑마을은 '공동체가 우선'이라는 대원칙 아래 30년 장기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며 "논밭을 한 뼘씩 가는 농부의 자세로 쉬엄쉬엄 꾸준히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주=글·사진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송민종 화탑영농조합 연구개발실장 “주민 98% 조합원 한마음… ‘잘사는 농촌’ 일굴 자신있어”
입력 2014-08-30 03:44 수정 2014-08-30 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