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에 분개해 일본군 장교를 죽인 백범 김구 선생은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충남 공주 마곡사로 은신한다. 이후 출가한 백범은 1898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마곡사에 머물렀다. 이런 인연으로 백범은 마곡사 대광보전 주련(柱聯)에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란 글씨를 남겼다.
서당에서 한학교육을 받은 백범은 많은 휘호와 글씨를 남겼다. 이 중에는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 등에게 건넨 휘호와 글씨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백범의 필체가 남성적인 박력과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갖춘 당나라 때의 안진경체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백범의 글씨는 큰 기교는 없지만 힘이 넘친다. 서거 당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붓글씨 두루마리 ‘愼其獨(신기독·홀로 있을 때도 삼간다) 思無邪(사무사·생각함에 그릇됨이 없다)’에선 백범의 불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약간의 떨림과 넓은 행간은 백범 글씨의 또 다른 특징이다. 떨림은 일본인 총탄에 맞은 후유증 때문이고, 넓은 행간은 심리학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도난당했던 백범의 친필 휘호 ‘天君泰然(천군태연)’이 52년 만에 제자리를 찾게 됐다. 백범이 1948년 강릉 선교장 주인 이돈의에게 보낸 것이다. 백범은 일제 강점기 남몰래 독립운동가를 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그에게 이 휘호를 선물했다. 천군태연은 중국 송나라 때 범준(范浚)이 지은 ‘향계집’ 심잠(心箴)편에 나오는 구절로 마음이 의연한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최근 이 휘호를 경매시장에서 구입한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이 도난품이란 사실을 알고 선교장 측에 기증하기로 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휘호와 함께 도난당한 백범의 또 다른 친필 휘호 ‘天下偉功(천하위공)’은 아직 제자리를 못 찾고 있다. 천하위공은 예기에 나오는 구절로 ‘하늘 아래 모든 것은 공평하다’는 뜻이다.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린 쑨원의 신념이기도 하다. 백범과 쑨원은 서로를 존경했다. 백범 글씨는 130×30㎝ 반절지 기준으로 1000만∼15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평생을 조국 독립에 헌신한 민족지도자의 얼과 혼이 담긴 흔적들에 가격을 매기는 현실이 죄스럽다. 천하위공도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한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문화유산은 원래 자리에 있어야 빛을 발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한마당-이흥우] 제자리 찾은 백범의 ‘天君泰然’
입력 2014-08-29 03:10